가난한 남자
덜컥거리는 소리와 야릇한 신음소리. 이건 남녀가 정사를 나누고 있는 소리라는 걸 경험이 없는 혜석도 쉽게 알 수 있었다. 거기다 여자 탈의실에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 사람이 하원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거기다 그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다름 아닌 미나였다.
혜석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지금 여기서 나가자니 왠지 두 사람의 밀회를 볼 것 같았던 것이다.
잠시 고민하며 서 있는데 갑자기 탈의실이 적막으로 가득 찼다.
재빨리 손을 뻗어 진동모드로 바꾸었지만 이미 늦은 듯했다.
혜석의 시야에 익숙한 구두가 들어왔다. 그건 바로 하원의 구두였다.
입술을 질끈 깨물던 혜석이 고개를 들자 하원과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그는 전혀 당황한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로 혜석이 이곳에서 그런 행위를 하다 들킨 것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액정의 반짝거림이 사라졌다. 하지만 다시 손바닥에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때 언제 다가왔는지 하원이 바로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혜석의 입술을 살짝 벌렸다. 그러자 왠지 모르게 그의 손가락에서 비릿한 냄새가 확 풍기는 느낌이 들어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아 입을 막고 문 바로 옆에 있는 세면대로 뛰어가 헛구역질을 해댔다.
“애송이.”
그는 그 말 한마디를 남긴 채 탈의실을 빠져나갔다. 다리에서 힘이 풀린 혜석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