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지 못한 자
문학사에서 가장 단단하고 정교하게 축조된 ‘유령의 집’이자
현대 여성 고딕소설이 이루어낸 눈부신 성취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아일랜드 작가 도러시 매카들의 첫 소설이자 문학사에서 가장 단단하고 정교하게 축조된 ‘유령의 집’으로 손꼽히는 작품. 도시 생활에 찌든 남매가 아름다운 바닷가의 전원주택을 사들이고 기이한 사건들을 경험하며 집에 얽힌 미스터리를 폭로해나가는 이야기는, 그러나 그 익숙한 흐름을 단번에 전복시키는 놀라운 반전을 숨기고 있다. 페미니스트이자 정치운동가이기도 했던 매카들은 자신을 “후회도, 부끄러움도 없는 선동가”라고 규정했는데, 스스로 정의한 그 정체성은 소설가로서의 이력을 쌓은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고딕의 문법을 가장 모범적으로 재현해낸 소설이자 고딕소설의 전통 속에서 여성의 위치를 예리하게 인식하고 문제 제기 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초대받지 못한 자》가 바로 그 증거다. 덧붙여 정치 활동을 함께한 동지이자 절친한 친구였으며, 후에 아일랜드의 대통령이 되는 에이먼 데벌레라에게 가려졌던 정치운동가로서의 업적과 달리 그의 문학적 성취는 재조명되고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전통적인 여성상을 단번에 허물어뜨리는
세심하고 소중한 반전
시간이 흐르면 사건은 지나가지만 장소는 거기에 남아 그것을 기억한다. 누군가의 죽음이 얽혀 있거나, 특히 그 죽음에 의혹이 있을 때 그것을 절대로 잊지 못한다. 여기, 탁 트인 바다 전망의 ‘클리프 엔드’라는 집이 있다. 오래전 이 집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졌고, 그 사건은 이후의 입주자들에게 ‘불쾌한 소란’을 경험하게 한다. 마지막 입주자 역시 채 몇 달을 견디지 못하고 이 집을 떠나야 했는데, 그것도 이미 6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남매인 ‘로더릭 피츠제럴드’와 ‘패멀라 피츠제럴드’가 클리프 엔드에 들어오면서 소설은 비로소 집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폭로해나간다.
“자살 시도, 살인, 유령 등등! 우리가 전설의 중심에 살고 있나봐.”(66∼67쪽)
런던 생활에 지친 피츠제럴드 남매는 한적한 바닷가에 자리한 클리프 엔드라는 집의 매력에 금세 사로잡힌다. 괜찮은 조건에 비해 헐값에 가까웠지만 남매는 별다른 의심 없이 집을 사들인다. 이후 집을 매도한 ‘브룩 중령’과 그의 손녀 ‘스텔라’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 교유하며 점차 집에 정착해나간다. 특히 괴팍한 성격의 브룩 중령과 달리 할아버지의 지나친 통제 속에서도 의연함과 의젓함을 잃지 않는 스텔라에게 로더릭은 강한 호감을 느낀다. 하지만 집에서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이 연이어 일어나고, 급기야 이에 놀란 패멀라가 기절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그럼에도 남매는 물러서거나 공포에 질리지 않고 차근차근 기현상에 대해 추리해나간다. 와중에 어릴 적 어머니와 살던 클리프 엔드에 그리움을 느끼며 찾아온 스텔라가 유령에게 죽은 어머니의 모성을 느끼게 되고, 이를 알게 된 브룩 중령은 돌연 스텔라를 감금하려 든다. 이제 남매는 집을 지켜내고 스텔라를 구해내기 위해서라도 클리프 엔드의 비밀을 풀어야 하는데…….
따지고 보면 우리의 임무는 비밀을 캐는 것이었다. 친밀한 우정과 깊고 사적인 슬픔을.(231쪽)
소설은 오빠인 로더릭의 시점으로 이어지지만 단서를 찾아내고 앞장서 비밀을 풀어나가는 것은 패멀라의 몫이다. 집을 포기하려는 오빠를 설득하거나 스텔라에게 마음을 뺏긴 오빠를 대신해 미궁 속으로 걸어 들어가 해결을 주도한다. 이러한 패멀라의 활약은 여성 인물이 사건의 주변부에 머물며 조력자의 역할에 그치는 수많은 고딕소설들과는 확연히 다른 성취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연애나 결혼을 거부하고 경제 주체로서도 독립적인 패멀라는 그 자체로 전통적인 여성상을 벗어나는 인물이지만, 스스로 그런 여성상의 문제를 지적한다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아울러 남매가 클리프 엔드의 내력을 조사하면서 서서히 화가이자 스텔라의 아버지인 ‘루엘린 메러디스’의 정체도 드러난다. 루엘린은 자신의 모델이었던 ‘카르멜’과 은밀하고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왔는데, 모델로서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도 카르멜을 철저히 착취한다. 그런데 뜻밖인 것은 루엘린의 아내인 ‘메리 메러디스’ 역시 남편의 부정을 묵인하며 자신에 대한 평판에 카르멜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메리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성녀’라 불릴 정도로 이상적인 여성상이었기 때문에 자유분방하게 행동하는 카르멜을 학대해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스텔라에 대한 참된 모성이 메리가 아닌 카르멜에게 존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소설은 고정되고 규정된 여성상의 허상을 낱낱이 들추어낸다. 나아가 예술적 완성을 명목으로 루엘린에 의해 희생당하지만, 끝내 밝혀지는 카르멜의 놀라운 정체를 통해 ‘남성 예술가’와 ‘여성 뮤즈’라는 전통적인 서사 구조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비판한다.
가장 무서운 공포영화이자
레트로 휴고상 최종 후보작
‘마거릿 캘런’이라는 필명을 사용해 다양한 극을 쓰기도 했던 작가의 소설답게 《초대받지 못한 자》는 시종 빠른 전개와 시각적으로 풍부한 묘사를 보여준다. 이러한 소설의 장점은 1944년 루이스 앨런 감독의 동명의 영화를 탄생시킨다. 영화 〈초대받지 못한 자〉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꼽은 ‘가장 무서운 공포영화 11편’ 중 한 편이자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레베카〉와 비견되는 중요한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아울러 《초대받지 못한 자》는 2018년 ‘1943 레트로 휴고상’ 최종 후보작에 오르는 등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그 뛰어난 작품성과 함의를 인정받고 있다. 테마파크에서의 ‘유령의 집’이나 ‘귀신의 집’조차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초대받지 못한 자》가 초대하는 미스터리와 공포의 세계는 기꺼이 들어가 오금을 저려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