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머무는 밤
‘사람의 향기와 시간의 그리움을 좇으며’
수십 번 뒤척인 한밤의 꿈 같은 여행
그 길 위에서 만나고 보고 듣고 겪은 순간들
수많은 길 위에 섰다. 때로는 길을 잃고 헤매기도, 어딘가에 멈춰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서성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그 위에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만났다. 많은 것을 비워냄과 동시에 또 그만큼 많은 것을 얻고 돌아왔다.
작가는 길 위에서 수없이 적어 내려갔다. 키보드 두드릴 때의 소리가 좋아서, 만년필이 종이를 지날 때의 느낌이 좋아서 적던 글들이 모이고 모여 많은 이야기가 되었다. “끊임없이 되뇌지 않으면 잊혀지는 기억처럼, 찾지 않으면 사라질 것들을 위해 나는 여전히 또렷한 색을 내는 모니터를 앞에 두고 빛바랜 종이를 손에 잡는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그 여행길 위에서 만나고 보고 듣고 겪은 순간들을 차곡차곡 빼곡히 담아낸 기록이다. 그와 동시에 그 기억들을 오래도록 잊지 않기 위해 떠올리고 쓰고 곱씹으며 수없이 지새운 밤의 기록이기도 하다.
조금은 다르지만 누군가는 기다렸을 이야기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여행에세이. 이 책 역시 여행에세이 중 하나지만, 작가는 그 수많은 책들 속에서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조금은 다르지만, 누군가는 기다렸을 이야기를.
작가는 여행에세이가 흔히 말하는 ‘용기’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용기를 갖고 떠나라고 강요하지도, 여행은 좋은 것이라고 무턱대고 꾸미지도 않는다. ‘나 이만큼 여행했다’ 자랑하지도 않으며 ‘내 여행은 이랬다’고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지도 않는다. 작가 역시 수없이 길 위를 떠도는 여행자이지만, 여행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하면서 떠나는 것마저도 경쟁을 하게 된 요즘의 현실에, 너무나도 쉽게 “용기를 갖고 떠나라”고 등 떠미는 사람들에 과감히 불편한 시선을 던진다.
“돈 없고 집 없이 숱한 밤을 보냈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행이 좋다”고 말하면서도 나와 너의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며 쉽게 ‘그러니까 너도 좋을 거야’ ‘그러니까 떠나야 해’ 같은 말을 내뱉지 않는다. “해야만 해”는 권위적이고 “할 수도 있지”는 책임 회피 같고 “하고 싶은 대로 해”는 주관 없어 보일까 봐 차라리 답 없는 주제에 대한 독백을 즐긴다는 작가는 그저 담담하고 소박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사진을 찍다가 글을 적다가 이제는 사람을 따라갑니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미련이 강해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 부러 길을 잃는다는 그녀. 서서히 잊혀져 가더라도 누군가에겐 여전히 간절한 것이기에 ‘낭만’을 잃지 않으려는 그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그저 계절의 변화를 물끄러미 관찰하고, 길 위에서 사색하고 그림을 그려 가며 노래에 기억을 담고 냄새에 추억을 담는 그녀. 시답잖은 일에 자주 감동을 하지만 “감동이란 감정이 영원히 녹슬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래도록 사사로운 것에 흔들리고 무너지며 기꺼이 동요당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녀. 결국, ‘여행’이 아니라 ‘사람’이 답이라며 사람 냄새를 좇는 그녀.
이처럼 ‘여행’ 자체가 아니라 그 여행에서 다가오는 무수한 것들에 시선을 빼앗기고 마음이 동한다는 작가는 덤덤히 말한다.
“사진을 찍다가 글을 적다가 이제는 사람을 따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