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 다녀왔습니다
“교토에서는 느릿느릿 걷다 보면 구석구석 빈틈으로 사유가 비집고 들어온다”
임경선 작가가 교토에서 배운 정서情緖에 관하여
임경선 작가는 2016년 ‘마틸다’라는 출판사를 차려 직접 책을 냈다. 바로『임경선의 도쿄』.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낸 터라 일본 특유의 정서를 이해하고 알려지지 않은 숨은 장소들을 많이 아는 작가는 이 모든 정보를 『임경선의 도쿄』에 담았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별도의 마케팅 없이 초판 2,000부를 모두 판매했으며 인터넷서점 여행 분야에서 한 달 넘게 1위를 고수하기도 했다.
뒤이어 교토 에세이를 준비하면서 작가는 ‘감각’의 도시 도쿄와 달리, ‘정서’의 도시인 교토는 “이 도시가 오랜 세월에 걸쳐서 일관되게 품어온 매혹적인 정서들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여겼다. 일부러 멋을 부리지 않는 도시, 돈보다는 살아가는 자세가 중요한 도시, 전통을 지키면서 미래의 모습을 모색하는 도시, 교토는 “결코 변하지 않을 아름다움을 지켜나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실제로 행한다. 작가는 이 도시의 한 계절을 걸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영감을 받았고, 교토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유의 정서와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본 도시의 기억을 불러낸다. 그리고 독자들은 임경선 작가가 안내하는 교토의 거리를 거니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교토와 교토 사람들은 자부심이 드높았지만 동시에 겸손했고, 개인주의자이되 공동체의 조화를 존중했습니다. 물건을 소중히 다루지만 물질적인 것에 휘둘리기를 거부했고, 일견 차분하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단호하고 강인했습니다. 예민하고 섬세한 깍쟁이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주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만의 색깔을 지켜나갔고, 내가 존중받기를 원하는 만큼 타인을 향한 예의를 중시했습니다. 성실하게 노력하지만 결코 무리하지는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스스로 만들어갔고, 끝없는 욕망보다는 절제하는 자기만족을, 겉치레보다는 본질을 선택하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제가 개인적으로 지향하는 인간상에 가깝습니다.
_「서문」에서
“살아가면서 생각의 중심을 놓칠 때 이곳이 무척 그리워질 것이다”
도시는 정서로 기억된다
작가는 주재원인 아버지 덕에 성장기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다. 요코하마와 오사카 그리고 도쿄에서 6년을 살면서, 홋카이도부터 규슈까지 일본의 많은 곳으로 여행을 다녔다. 단정하면서도 결기 있는 글의 느낌은 어쩌면 그 시절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일본의 도시는 도쿄와 교토. 그저 관광객으로 방문했을 때는 느끼지 못했으나 세 번째로 방문한 교토에서 일상의 장소들과 그곳에서 일하는 교토 사람들을 만났다. 여느 일본의 도시와는 다른 그곳만의 정서를 접하면서 의아하기만 했던 작가는 이 도시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고 어느새 교토와 교토 사람들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이기적이라고 오해를 사기도 하는 개인주의자 같은 면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접객 문화, 교토 특유의 노포, 오래된 것을 소중히 하는 정서 등 얼핏 보면 정이 없다고 할 만한 모습. 그러나 이 모습에는 역사적인 배경과 더불어, 자신이 존중받기를 원하는 만큼 타인에 대한 예의를 중시하는 태도가 깔려 있었다.
동네 서점은 주민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자기네 서점을 찾지 못하면 매장으로 전화해 문의해달라고 당부하고, 카페는 아이들과 시간을 좀 더 보내기 위해 일주일에 나흘만 영업하고, 잡화 가게는 미리 알고 찾은 손님이 불편하지 않도록 오가는 사람들이 불쑥 찾지 않게 하기 위해 간판을 달지 않는다. 요즘 시대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태도, 하지만 식당과 가게, 서점 들을 둘러보며 어느새 납득하게 되고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한다. 늘 바삐 달리며 살아가는 우리는 이런 도시의 존재만으로도 숨 쉴 틈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속한 마을 공동체에 대한 예의. 한 공간에 머무는 다른 손님들에 대한 예의.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는 나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한다. 타인을 향한 세심한 배려는 내가 언젠가 고스란히 돌려받게 될 호의이기도 하니까. 쾌적한 공존을 위해 우리 모두가 조금씩 더 서로에게 신중할 필요가 있음을, 이 아름다운 동네 서점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넌지시 가르쳐주었다.
_74~75쪽에서
교토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개인주의자 성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이기주의를 조장하지는 않는다. 아니, 개인주의 본연의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이 이루는 공동체는 건강하고 유연할 수가 있다. 남의 가게의 좋은 점을 좋다고 인정하고 널리 그 정보를 공유하고자 하는 아량도 자기 가게에 대한 다부진 자부심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니까.
_190쪽에서
진정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알고, 폼 잡지 않고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교토, 작가는 개인적으로 지향하는 인간상에 가장 가까운 도시라고 고백한다. 또한 작가는 말한다, “살아가면서 생각의 중심을 놓칠 때, 내가 나답지 않다고 느낄 때, 초심으로 돌아가??싶을 때, 마음을 비워낼 필요가 있을 때” 교토가 무척 그리워질 것이라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마음”
올가을에는 교토에 가야지
임경선답다.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교토의 면모를 이 책 한 권에 담았다고 할 수 있다. 그간 교토라고 하면, 오사카와 함께 묶어 하루 이틀쯤 들르는 곳에 불과했다. 그런데 단순히 관광이 아닌, 머무는 여행이 각광을 받으면서 도쿄를 자주 찾던 관광객들이 교토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에 걸맞은 책이 때마침 나온 것. 임경선만의 까다로운 시선으로 선별한 교토의 정서와 장소들을 만나볼 시간이다.
임경선 작가가 소개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교토. 교토가 처음이라면 이 도시에 대한 사전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두 번째라면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보며 전혀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번 가을 『교토에 다녀왔습니다』를 들고 교토로 여행을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정성스러운 대접과 근사한 시간에 감사합니다.’ 가게 쪽을 향해 손님도 깊이 머리 숙여 절하며 마지막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 교토의 수많은 골목길 여기저기에서 오늘도 이런 정성이 넘치는 작별의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다시 만날 때까지 서로의 안녕을 진심으로 기원해주는 일. 겉으로는 조금 차가워 보일지 몰라도 실은 은근한 속정으로 이렇게 여운을 남겨주기에, 교토와 교토 사람들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도리가 없다.
_231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