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이야기
한 시절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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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깊은 호텔의 예고된 마지막처럼, 각자의 인생에 찾아온ㅤ한 시절의 끝을 온몸과 마음으로 겪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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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동안 호텔에 머물며 다른 사람이 쓴 각본을 각색하게 된 영화감독 (<호텔에서 한 달 살기>), 영업 부진으로 마련된 낮 시간 대실 상품을 이용하는 비밀스러운 커플 (<프랑스 소설처럼>), 자기만의 안전한 세계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 고학력 호텔 메이드 (<하우스키핑>),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사랑 후 상처를 삭이는 도어맨 (<야간 근무>), 호텔의 아름다운 피아노 바에서 돈과 인간관계의 함수를 알아가는 개그맨 (<초대받지 못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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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은 환경의 변화는 복잡하고 모순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집착과 상실감, 분노와 무력감, 불안과 의연함 같은 다양한 감정 속에서 우리는 붕괴하거나 정면 돌파하거나, 견디거나 놔 버린다.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더라도, 그 모든 분투에는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음을 이제 나는 안다."/ `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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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부여잡고, 무엇을 놔줘야 할까.
언제까지 저항하고 언제부터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는 지금 대체 어떤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변화의 기로에 선 주인공들은 자신에게 묻는다. 바로 이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들처럼.
변함없이 고유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일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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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부르는 이름][곁에 남아 있는 사람] 등, 동시대 사람들의 애틋한 이야기를 특유의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로 담아내는 작가 임경선이 소설집 [호텔 이야기]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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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인 감염병이 장기화되며 한 시절이 끝나고 우리가 알던 그 시절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소설의 배경인 `그라프 호텔`은 말하자면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과묵하게 존재하던 장소이다. 하지만 끝내 그라프 호텔도, 한 시절의 눈부신 영광을 뒤로하고 문을 닫게 되고, 유서 깊은 호텔의 예고된 마지막처럼 이 소설은 각자의 인생에 찾아온 한 시절의 끝을 온몸과 마음으로 겪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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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본연의 `나`로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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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의 모호하고 복잡한 부분을 섬세하게 성찰해 온 작가 임경선은 변화와 선택, 발견의 순간에 맞닥뜨린 2040세대 인물들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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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동안 호텔에 머물며 원치 않게 다른 사람이 쓴 각본을 각색하게 된 영화감독 두리(<호텔에서 한 달 살기>)는 자신의 전성기가 지나가고 있음을 자각한다. 초연해보려고 애쓰지만 종종 `나는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지` 싶다. 영업 부진으로 낮 시간 대실 상품을 내놓은 호텔에 `여자`를 만나러 가는 `남자`(<프랑스 소설처럼>)는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여자`를 기쁘게 해보려고 노력하지만 문득 자신이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허상일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자발적 선택으로 메이드가 된 고학력자 정현(<하우스키핑>)은 호텔이 연말에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만의 안전한 세계를 빼앗길 것 같은 위기감을 느낀다.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사랑 뒤 이별의 상처를 삭이는 호텔 도어맨 동주(<야간근무>)는 아는 작가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증명하려고 애쓴 자신의 무모한 모험에 대해 들려준다. 그라프 호텔의 아름다운 피아노바에서 돈과 인간관계의 함수를 알아가는 개그맨 상우(<초대받지 못한 사람>)는 낯선 세계를 향한 동경과 익숙한 인간관계의 아늑함 사이에서 위태롭게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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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했던 그 무엇을 잃어가면서, 혹은 변할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을 목격하면서 그들은 어떻게 견디고 살아냈을까. 무심하고 건조하지만, 그 아래로 소용돌이치는 감정들을 담은 단편소설들은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고독하면서도 여운 짙은 그림들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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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의 장소,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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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임경선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호텔`이라는 공간과 친숙했다. 나무 바닥이 삐걱거리는 유럽 소도시의 남루한 호스텔부터 대도시의 특급 호텔, 주인의 개성이 녹아 있는 베드앤브랙퍼스트(B&B)와 게스트 하우스, 온천 료칸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게 경험한 그는 이를 토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숙소의 다양한 특성들을 집약한 `그라프 호텔`을 탄생시켰다. 오랜 시간의 풍파를 견디면서 누적된 역사가 있고, 고집스러운 취향이 있고, 효율보다는 멋과 여유가 있고, 매뉴얼대로 움직이기보다 인간적인 환대가 있고, 무엇보다도 울창한 나무 그늘 아래 수영장이 있는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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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 자락에서 40년 역사를 뒤로 하고 올해 12월 31일에 영업을 종료하는 밀레니엄 힐튼 서울 호텔의 안타까운 철거 소식도 이번 신작을 집필하는 데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365일 24시간 생생하게 움직이고 있는 곳,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 모든 부서 직원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곳, 편안함과 설렘을 동시에 안겨주는 비일상적인 곳 - `호텔`은 먼 훗날 오래도록 남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매혹의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