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여기는 남자들의 세상, 남자들의 세상이지.
하지만 여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 소용없어.
황무지에서 길을 잃고 쓰?窄꼬?헤맬 뿐.
―제임스 브라운 노래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중에서
천명관 4년 만의 장편소설, 더욱 강력한 페이지터너로 돌아왔다!
롤러코스터를 탄 듯 아찔하게 펼쳐지는, 수컷들의 한 바탕 소동과 구라의 향연
명실공히 한국 최고의 이야기꾼 천명관이 신작 장편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를 예담에서 출간했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 이후 4년 만이다. 격동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남자의 기구한 인생 유전을 통해 굵직한 서사의 힘을 보여줬던 그가 이번에는 뒷골목 건달들의 한바탕 소동을 다룬 블랙코미디를 선보인다.
인천 뒷골목의 노회한 조폭 두목을 중심으로 인생의 한방을 찾아 헤매는 사내들의 지질하면서도 우스꽝스런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입체적이고 생생하다. 서사를 이끌어가는 천명관 특유의 능청스러운 입담도 여전하거니와 무엇보다 대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내들의 거친 입말과 구라가 파도를 탄 듯 아슬아슬하게 술렁거린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정말 멍청한 건지 아니면 멍청한 척하는 것인지 모르게 이어지는 대화는 소설 제목처럼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라고 정의 내리는 순간, 남자의 세상이 얼마나 허술하고 어설픈 욕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새삼 확인하게 만든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펼쳐지는 선문답과 엉뚱한 행동들은 실소를 머금게 하지만, 사뭇 진지한 태도로 각자의 앞에 놓인 사건들을 처리해 나가는 인물들은 비애감마저 갖게 한다. 상대가 의인인지 악인인지, 내 편인지 적의 편인지 판단할 수 없는 비열한 세상. 그러나 끈질기게 살아남아 자신의 성공을 증명하고 싶은 사람들. 천명관은 이 소설에서 건달들의 삶을 희화화시켜 한껏 조롱하면서도 동시에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이야기임을 증언한다.
제대로 돈이 되는 일엔 언제나 좋은 냄새가 났다.
고급 오 데 코롱처럼 가볍고 상쾌한 냄새! 지금이 바로 그랬다.
정식 조직원을 꿈꾸며 형님 밑에서 애쓰는 어린 건달 울트라는 사설경마에 투자한 두목의 심부름으로 말을 손 보러갔다 우연히 종마를 훔쳐와 몰래 키우게 된다. 그런데 그 종마가 무려 35억짜리일 줄이야. 겁먹은 울트라는 종마를 끌고 도주하기 시작한다. 그러는 한편, 인천 연안파의 양 사장을 중심으로 밀수 다이아몬드를 노리고 각지의 건달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는데……. 부산의 손 회장, 영암의 남 회장 등 연식??오래된 굵직한 건당 두목들부터 냄새를 맡은 조무래기 양아치들까지 모이는 결전의 순간이 다가온다. 과연 다이아몬드를 손에 쥐는 것은 누구일까. 울트라는 35억 종마를 데리고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까? 건달, 양아치, 삼류 포르노 감독, 대리 운전사, 사기꾼, 마사지사 등 밑바닥 군상들이 각자의 인생을 건 한 바탕 도박을 시작한다.
이 소설은 대하서사가 아님에도 꽤 많은 수의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럼에도 치밀하게 짜여진 케이퍼 무비의 각본을 보는 듯 주인공들은 저마다 팀을 이뤄 동일한 타깃을 향해 움직인다. 물론 이 와중에 신뢰와 협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목표물을 먼저 손에 넣은 자만이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 것. 얽히고설킨 건달들의 조직도 안에서도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천명관의 이야기는 롤러코스터를 탄 듯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아찔하게 펼쳐진다.
인생은 과연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이번에도 역시 짐작할 수 없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천명관의 이야기처럼!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는 4개월 동안 카카오페이지에서 사전 연재를 통해 독자들과 먼저 만났다. 문학보다는 대중적인 장르소설 위주의 작품들이 사랑받는 플랫폼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8만여 독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영화로 만들어달라는 댓글들로 넘쳐났다. 일찍이 한국 순수문학의 견고한 테두리 밖에서 서사적 내공을 쌓아온 천명관이기에 대중과의 교집합은 클 수밖에 없다. 문단의 취향이 아닌 철저히 스토리텔링의 본질에 천착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천명관이야말로 전통적인 서사의 맥락을 가장 착실하게 전수하고 작가일 것이다. <고래>에서 시작된 기발한 상상력과 무궁무진한 이야기의 힘은 <고령화 가족> <나의 삼촌 브루스 리>를 거치며 사회적 비판 의식을 갖춘 리얼리즘의 가능성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이번 소설은 보다 대중적이고 영화적이다. 전통적 문학 독자만이 아니라 웹소설과 스마트폰에 익숙한 젊은 독자들까지 흡수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간결하다. 하지만 그 간결한 대사와 이야기에는 인생의 비애와 아이러니를 포착해내는 천명관 특유의 화법이 여전히 살아 숨 쉰다.
이 소설 속의 사내들은 평탄한 삶을 물려받지 못했다. 악다구니처럼 펄펄 뛰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내가 당하기 전에 먼저 상대를 공격해야 하는 생존의 법칙을 물려받았을 뿐이다. 구라와 허세, 험한 욕설을 무기처럼 장착하고 전장으로 나가는 수컷들의 삶을 작가는 냉소와 유머를 섞어 차지게 묘사한다. 그러나 허망한 인생들에게도 꿈과 순정은 남몰래 꿈틀거리는 것. 유일하게 등장하게 여성 캐릭터인 연희(지니)는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남자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마력을 뽐낸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작가가 인용한 제임스 브라운의 노랫말처럼 ‘남자들은 여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현은 이 지질한 사내들의 텅 빈 내면을 상징하고 있기도 하다.
한번 붙잡으면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천명관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예상과 추측을 벗어나 이야기는 생명력을 부여받아 제멋대로 나아간다. 인물들의 운명은 어찌 될지 짐작도 할 수 없다. 우리의 인생을 집필해주는 작가가 있다면 물어보고 싶을 정도이다. 그렇게 우리는 천명관의 다음 이야기를 또 기다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