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일기 - 공포와 쾌감을 오가는 단짠단짠 마감 분투기
“내일의 내가 할 줄 알았지…”
매일, 내일의 나에게 배신당하는 오늘의 나에게
“늘 그렇듯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돼’의 시기는 어느샌가 찾아온다. 내일의 내가 하겠지. 저녁의 내가 하겠지. 서너 시간 후에는 아마 시작하지 않을까. 이것만 보고 나면 할 거야. 30분에는 시작하자. 어라? 이미 시간이 지나 있잖아…….” - 본문 중에서
살면서 누구나 한번은 ‘현재의 나’를 위해 ‘미래의 나’를 덜컥 믿어버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음이라도 편하면 좋겠는데, 그 또한 쉽지 않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그날’이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고 있기 때문. 속은 타들어 가는데 눈치 없는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더 큰 불안은 이내 엄습한다. 미래의 나에게 배신당할 것 같은 공포와 두려움에서 비롯된 불안.
역시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다 보니 어느새 마감일이 닥쳤다. “아, 딱! 하루만 더 있으면 좋겠다.” 탄식을 내뱉는데, 잠깐! 이거 데자뷔 아닌가? 지난번에도 분명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은데…….
“마감이 온다. 그리고… 현타도 온다!”
있어도 큰일, 없으면 더 큰일
나를 움직이는 힘, ‘마감’에 대하여
여기, ‘마감’을 숙명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마감 노동자 8인이 있다. 소설가 권여선, 김세희, 번역가 권남희, 방송작가 강이슬, 광고회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김민철, 편집자 출신 에세이스트 이영미, 기자 출신 에세이스트 이숙명, 일러스트레이터 임진아까지. 모두 글과 그림을 업으로 삼은 작가이자 생계형 마감 노동자다.
『마감 일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마감을 향해 달리고 있는 프로마감러들의 마감 일상을 담았다. 다양한 직군만큼이나 개성 넘치는 마감 에피소드는 독자에게 읽는 맛을 선사한다. 마감일을 3주나 넘기고도 ‘숨바 섬’으로 여행을 떠나 편집자에게 편지를 보내는 작가의 능청맞음에, 종일 놀지도 않았는데 일한 것도 없다는 번역가의 자조 섞인 푸념에, 반강제로 쟁취한 청탁으로 무려 7년 만에 다시 소설을 쓰며 자발적 마감 노동자가 된 소설가의 귀여운 패기에 어쩐지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한 권 마감하고 돌아서면 마감 또 마감. 평생 이렇게 마감만 하다 인생을 마감해야 하나. 아, 남은 반편생도 뻔할 텐데, 더 살 의미가 없다, 하고 우울증이 밀려오다가, 입금 혹은 의뢰가 들어오면 우울증이 뭔가요.” - 본문 중에서
‘작가라면 작가다운 멋이 흐르고, 작품도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완성하겠지?’ 내심 이런 모습을 기대했던 독자라면 예상 밖의 이야기에 조금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생계형 마감 노동자의 고충과 속내는 물론, ‘마감’을 원동력 삼아 꾸역꾸역 삶을 밀고 나가는 작가들의 ‘짠내’ 나는 상황들을 가감 없이 펼쳐놓는다. 여덟 편의 내밀한 글을 따라가다 보면 뜻밖의 페이지에서 자신의 모습을 맞닥뜨리며 진한 공감을 하게 될 것이다.
“기필코 오늘은 마감하고 잘 거야”
마감을 대하는 태도가
곧 일과 삶을 대하는 태도
마감을 대하는 태도는 일과 삶을 대하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마감 일기』에는 각 저자들이 오랜 시간 꼬박꼬박 마감을 치르며 다져온 자신만의 작업 노하우와 루틴은 물론,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신념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태어난 이상 죽을 때까지 피할 수 없는 마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지속할지에 대한 고민과 사려 깊은 답 또한 생생하게 녹아 있다.
나의 일상이 중요한 만큼 타인의 일상을 존중하고 이 사실을 매 순간 자각하는 것, 자신의 손을 떠난 일은 필요 이상으로 자책하며 후회하지 않는 것, 일을 선택할 때 기쁨의 유무를 체크하는 것,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힘을 내고 충분한 시간을 마련하는 것, 일의 고달픔에 넋두리를 하면서도 그 일을 완벽히 마무리 짓는 것…… 그간 부지런히 마감하며 체득해온 일과 삶을 대하는 태도이자 스스로를 위한 다짐이다.
우리는 모두 마감을 한다. 꼭 글과 그림이 아니어도 학교 과제, 회사 업무, 하다못해 하루의 마감이라도. 마감이라는 단어가 유독 크고 무겁게 느껴지는 날이면, 이 책이 작은 날개가 되어줄 것이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씩씩하게 마감을 헤쳐나가는 작가들의 비장하고 귀여운 고백을 읽고 있노라면, 한결 삶이 가벼워지는 느낌일 테니 말이다.
“너무 걱정은 마세요. 마감은 끝나거나 안 끝나거나 할 겁니다. 책도 팔리거나 안 팔리거나 하겠지요. 하지만 우리 인생은 언젠가 확실히 끝이 납니다. 우리 그냥 사랑을 해요. 이 우주를, 가련한 중생을, 마감 늦는 작자들을요.” - 본문 중에서
※ 마감 일기_부록.txt
마감 앞에서 나는 어떤 유형일까?
① 마감이 우리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한가요?
우리 그냥 사랑을 해요.
- 사랑이 넘치는 박애주의자형
② 마감요? 내일의 내가 하겠죠!
- 자신에 대한 신심이 깊은 Believer형
③ 마감이란 그런 겁니다. 살아 있다, 마감을 한다!
- 살아 있고, 고로 마감하는 데카르트형
④ 마감 때만 되면 자꾸만 ‘딴짓’이 하고 싶어요.
-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소작농형
⑤ 마감이 어디 있어? 내가 주는 날이 마감이지!
- 믿는 구석이 있는 배짱이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