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근대조선의 여행자들 - 그들의 눈에 비친 조선과 세계

근대조선의 여행자들 - 그들의 눈에 비친 조선과 세계

저자
우미영 지음
출판사
역사비평사
출판일
2018-04-17
등록일
2019-12-24
파일포맷
PDF
파일크기
13MB
공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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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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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수학여행에서 세계일주까지, 근대 조선인들의 다양한 여행
어디를 여행하고, 무엇을 보고, 어떻게 생각했을까


‘여행’ 하면 쳇바퀴 도는 일상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는 것을 생각하고, 일탈과 자유와 설렘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실제로 이 책의 기행문 필자들 가운데서도 그런 감정을 느끼며 여행을 한 이가 있다. 외국 유학길에 오르며 여정에서 느끼는 온갖 감상을 말하는 조선 청년, 직장에서 쌓인 피로를 풀고자 휴가 여행을 꿈꾸는 문인 노천명, 자연 풍광이 수려한 명승지를 찾아 떠나는 단체관광객들….
여행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이 말은 여행이 업무의 연장선일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 여행이 어디 휴식의 의미만 있을까. 학생들의 수학여행은 교육과정의 연장선이고, 기자의 세계 시찰 여행은 선진국의 문명과 문화를 조사하는 업무의 연장선이며, 문인의 여행은 신문사나 잡지사의 청탁에 따른 글쓰기의 일환이다.

이 책은 근대 조선의 다양한 여행자와 여행 양상, 그리고 그것만큼 다양한 여행자의 시선을 들여다본다. 여행자는 학생, 기자, 작가, 학자, 정치인 등 주로 지식인뿐 아니라 일반 관광객도 포괄하며, 여행 형태는 휴가 여행뿐 아니라 업무 성격의 여행도 포함한다. 특히 1920년대 여학교의 원족(遠足), 1930년대 수학여행, 신혼여행, 유학생이 유학 대상국에 도착하기까지의 여로, 탐승단·견학단 등의 단체관광, 신문사·잡지사 기자와 정치인의 시찰 여행 등 다양한 여행 형태를 포괄한다. 여행 대상지는 조선 전 지역에 걸치고, 만주와 일본, 미국, 유럽까지 아우른다. 여행자가 곳곳의 여행지에서 본 것들은 그야말로 가지각색이다. 수려한 자연 풍광, 경주·부여·평양 등 조선의 문화 유적, 일본과 유럽 등의 도시 문명 등이다.
이 책은 근대 조선인의 여행, 특히 여행자의 시선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은 각자 어느 위치에 서 있는지에 따라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그 관점과 시선은 제국(일본)-식민지(조선)라는 정치적 상황의 영향 때문에 더욱 뚜렷이 부각된다. 근대 기행문을 남긴 필자, 즉 여행자의 시선은 여러가지다. 주체적인 시선으로, 동경과 선망의 시선으로, 일제의 정치 전략에 포섭된 시선으로, 현실과 의식의 불일치로 인한 복잡한 시선으로 식민지 조선과 세계를 바라보는 다양한 여행자에 관한 이야기다.

시선 1 : 기차 속 여행자의 시선
보는 방식이 바뀌면 생각도 달라진다


고종의 특사 자격으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고 돌아온 민영환은 그 여정을 기록한 『해천추범』에서 처음 타본 기차에 대해 바람이 달리고 번개가 치는 듯하니 보던 것이 금방 지나가 거의 꿈속을 헤매는 것 같다고 했다. 조선에 아직 기차가 도입되기 전이었으니, 기껏 경험해본 탈것이라야 가마와 우마차가 전부였을 것이다. 엄청난 경이로움과 신비함이었으리라. 흥미로운 점은 그가 기차를 타고 가면서 바깥 풍경을 여유롭고 구체적으로 적은 것은 아주 소략할 뿐, 거의 대부분 출발지와 도착지 중심으로 지나가는 모든 역을 좌표 위의 점처럼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기차로 인한 사이 공간의 소멸이다.
최남선의 「교남홍조」와 「평양행」은 열차 기행문이라 할 만하다. 그의 글에는, 기차에 의해 통제되지만 동시에 새롭게 구성되는 여행자의 시선이 잘 나타나 있다. 객실 안 여행자 최남선은 기차의 달리는 속도 때문에 바깥에 있는 하나의 대상을 지속적으로 볼 수 없다. 객실 안의 공간이라고 다르지 않다. 승객들은 서로에게 ‘보거나’ ‘보이는’ 일방향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대상으로부터 소외된 최남선은 앞자리에 앉은 일본 여인을 두고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대상을 보지만 정작 실체는 없는 상상 속의 대상인데, 이는 기차가 만들어낸 또 다른 시선으로서 여행자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해석이다.

시선 2 : 소비 대중의 탐승적 시선
시각적 소비 상품이 된 조선 국토와 고도(古都)


1920~1930년대는 여행과 관광이 일반화된 시기이다. 3·1운동 이후 일제는 무단통치에서 문화정치로 식민지 정책을 전환했는데, 그에 따라 1920년대 초는 일본의 발전된 문물을 시찰하게끔 하려는 목적의 단체관광단이 많이 모집되었다. 일본의 근대화된 문물 시찰을 통해 조선 관광객으로 하여금 일본은 문명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공고화시키고자 함이었다. 여기에는 제국과 식민지를 문명과 야만으로 이분하는 제국의 식민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었다. 일본을 여행하는 조선인 관광단은 제국의 이데올로기에 호출되면서, 동시에 상품을 욕망하고 소비하는 대중으로 변모해갔다.
한편, 1920년대 후반부터 조선일보사나 삼천리사 등 언론사 중심으로 자연 풍광이 수려한 명승지나 경주 등 고도(古都)를 여행하는 단체관광단이 조직되었다. 소비대중문화의 시대로 일컬어졌던 만큼 식민지 영토도 소비 상품이 되었다.
고적 중심의 경주 여행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식민지 땅으로서 경주의 현실을 볼 수 있는 여행자의 눈이 가려지고, 그 결과 터전으로서 경주의 설 자리는 잃어버린다는 점이다. 여행자는 식민지 시기 경주의 현실을 읽어내기가 어렵다. 단지 소재적 차원에서만 조선적인 것을 환기하거나 유람 도시, 관광 도시로서 고도를 시각적으로 소비할 뿐이다. 또한 일본제국의 프레임에 갇혀 식민지의 자기 역사 인식이라는 주체적 태도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제국의 포섭적 전략 아래 이루어지고 만다.

수천 년 전에는 남부럽지 않게 살아 심지어 천문학까지도 남의 선도자가 되었던 우리가 오늘에 와서는 모든 것이 남에게 뒤진 것뿐이다. 이것이 자연의 원칙일까? 나가자!! 힘쓰자!! 우리도 사람인 이상에야 힘쓰면 못할 것이 없겠다는 생각을 나 혼자 하면서 다시 걷기를 시작했다.
―『근대 조선의 여행자들』 306쪽(이소란, 「경주기행문」, 『청년』, 1926. 12)

경주 수학여행기의 일부분이다. 저자는 위 수학여행기를 쓴 학생의 “이것이 자연의 원칙일까?”라는 표현을 통해 식민지화된 조선의 현실을 부지불식간에 자연의 순리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포착한다. 평양·경주·부여 등의 고도로 떠나는 수학여행 또한 일제의 동화정책과 무관하지 않으며, 역사 지리에 대한 학습보다 조선의 역사 공간 자체를 시각적으로 소비하는 소비문화의 하나로 정착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시선 3 : 주체적인 시선
‘제국=시찰의 주체’라는 도식을 깨버리다


이 책에는 여러 종류의 기행문이 망라되어 있으며, 저자는 이를 통해 여행자의 생각과 시선을 살펴보고 분석한다. 제1부~제5부까지는 여행과 여행자의 유형에 따라 다양한 이들의 여행기가 제시되어 있는 반면, 제6부는 중외일보사 신문기자 이정섭이 중심이다. 그의 기행문 속에 드러난 역사관과 생각은 굉장히 흥미롭다.
1920년대 중후반 국내외적 변화의 흐름을 타고 중외일보사는 세계 시찰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이정섭을 중국과 유럽에 파견했다. 대외적으로 일본에서는 보통선거 실시가 가시화되고 무산정당운동이 진전되고 있을 때이며, 중국에서는 국민당이 북벌을 전개할 무렵이었다. 대내적으로 조선에서는 민족주의운동이 고조되고 있을 때였다. 이정섭은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하에 시찰 여행을 떠났는데, 대개의 시찰자가 제국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던 반면 그는 ‘제국=시찰의 주체’라는 도식을 깨고 온전한 시찰의 주체가 되었다.

이 영국인은 중국을 개똥같이 나무랍니다. 말하길 중국인은 아편을 먹는다는 둥, 말하길 혁명군은 약탈을 시사한다는 둥. 이 말을 들은 나는 “당신은 중국인이 아편 먹는 것을 말하기는 좋아하면서 어찌하여 영국인이 아편 먹는 것은 좀 말하지 않는가요? 나는 결코 중상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19세기 후반기의 경제사상에 일대 혁명을 일으킨 칼 맑스가 쓴 『자본론』 제1권을 읽어보시오. 확실히 어느 주(註)에 ‘중국의 아편을 수입하여 이익을 보는 영국은 그 화가 자기 발등에 떨어졌다’라는 의미의 말이 있을 것이오. 또 사실상 중국인이 아편을 먹는 습관은 있다 할망정 아편을 먹여 다른 국민을 독살하고라도 황금만 모으기를 위주로 하고 인류 역사상에 제일 부끄러운 아편전쟁을 한 나라는 어느 나라인가요? 1840년부터 1842년간의 아편전쟁을 회고할 때 당신은 부끄러운 생각이 없소? 또 혁명군이 약탈한다 하지만 영국 국민같이 약탈을 좋아하는 국민도 세계에 없을 것이오. 만일 내 말이 의심되거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인도라 하는 주를 찾아보시오. 저자가 영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영국인은 인도에서 해적 행위와 제반 약탈을 마음대로 하였다는 말이 없는가.”
―『근대 조선의 여행자들』 468~467쪽(이정섭, 「호한기행(7)」, 『중외일보』, 1927. 2. 26.)

여러 나라 사람이 모인 가운데 벌어진 토론에서 이정섭은 중국에 대한 영국 제국주의의 폭력적 행태를 강하게 비판한다. 『자본론』과 『브리태니커 백과서전』을 끌어다가 자신의 논리를 정연하게 펼친다. 그는 중국 여행을 통해 조선 민족운동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했다.
「조선에서 조선으로」는 이정섭이 중국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서 몇 달 뒤 다시 세계일주를 하고 난 후 쓴 기행문이다. 그의 여행지는 미국, 영국, 아일랜드, 프랑스였다. 눈여겨볼 지점은 그가 미국, 영국, 프랑스를 보는 관점이다. 영국에 대해서는 여전히 제국주의의 중심으로 비판적이지만, 미국에 대해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나라라고 생각하여 비판의 날이 무뎌진다. 또, 한편 미국의 각 도시와 프랑스 파리에서 그들의 문화적 풍부함에 대해서는 호의적이다. 정치와 문화를 양분하여 생각하는 태도인 것이다.
제국에 상당히 비판적인 시선을 갖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제국의 문화정치적 위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모순! 이정섭의 기행문에는 식민지 지식인의 복잡한 내면과 한계가 잘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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