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인문학 수업 - 인간다움에 대해 아이가 가르쳐준 것들
“아이를 돌보며 겨우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육아의 즐거움과 괴로움이 가져다주는 빛나는 통찰들
‘늦깎이 워킹맘’이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소개하는 저자는, 오랫동안 인문학을 공부해온 연구자이자 인문학 책을 만드는 편집자이다. 그러다 우연하고 뒤늦은 출산 이후 직접 아이를 기르면서, 돌봄의 경험이야말로 인문학적인 영감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시에 육아의 고됨을 견뎌내는 데 그동안 공부해온 인문학이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 무엇보다 나를 경악케 한 것은, 출산의 고통도 아니고(생전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라 놀라긴 했다), 모유 수유의 고통도 아니고(출산의 고통보다 더 강도가 세서 그만큼 더 놀라긴 했다), 아기가 정말로, 너무나,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지나치게 사랑스럽다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너무 사랑스러운데 그 아이를 돌보는 일은 너무 힘들어서, 그 불균형 때문에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11쪽, 「프롤로그」 중에서)
아이를 낳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 생생하고 절절한 문장은, 단순한 고백에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간다. “엄청난 관찰력과 인내력과 창의성, 그리고 유머 감각이 필요한 육아의 과정”을 지나며 저자는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의무이자 권리임을 뼛속 깊이 깨닫”고 “육아의 와중에 얻는 인간에 대한 다양한 통찰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문학이 그 의미와 가치를 담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언어라는 것을 절감하고 육아의 즐거움과 괴로움이 가져다주는 빛나는 통찰들을 이 책 한 권에 담았다.
즉, 『돌봄 인문학 수업』은 부모를 넘어 누구나 돌봄을 통해 성취할 수 있는 가치와, 인간으로서 더 성장할 수 있는 방향을 보여주고 제시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우리 사회가 돌봄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함을 다양한 인문학 책과 접목해 설득력 있게 풀어가고 있다.
“우리에겐 돌봄의 의미와 가치를 알릴 언어가 필요하다.”
돌봄을 공부할 때, 우리 사회는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개인의 양육 경험이 사회에 유익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 사회적 의미에 대해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으며 이를 표현할 보편적인 언어는 턱없이 부족했다. 최근 KBS 2TV에서 ‘돌봄 예능’을 표방한 프로그램 <아이를 위한 나라는 있다>가 화제가 되고 있다. 저마다의 사정으로 아이를 돌보는 도움이 필요한 가정에 연예인 출연자들이 찾아가 하루 돌봄을 경험하는 이 프로그램은 ‘육알못’이던 남성 출연자들이 회를 거듭하며 좋은 방향으로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육아 전쟁을 겪어보며 대한민국 아이 돌봄의 현주소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돌봄 대란 실태 보고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방송에서 출연자들은 점점 돌봄에 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시청자는 이들의 표정과 생각 등이 따뜻하고 풍부해지는 광경을 목격한다. 더불어 돌봄을 가정의 틀 안에 가두지 않고 사회로 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양육자가 저마다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나눌 때, 육아는 더 이상 ‘전쟁’이 아니라 ‘사회적 의미’를 얻고 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돌봄의 경험은 어떤 방향으로든 양육자를 성숙하게 하며, 이를 제대로 인정하고 독려할 때 양육자의 성취는 아이를 더욱 현명하게 기를 수 있는 힘으로 선순환된다. 이는 육아로 인해 자칫 자신이 소모된다고 느끼는 양육자에게 무척 중요한 일이다. 특히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을 통해 일과 사랑, 성취와 돌봄이 양립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개인의 통찰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자 ‘돌봄 인문학 공부모임’을 열었다. 이때 엄마들의 큰 호응을 얻으며 모집 인원이 빠르게 마감되기에 이르고, 돌봄과 인문학의 접점에 대해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5년이 넘게 모임을 이어오면서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깨닫거나 고민하는 주제들을 다양한 문학, 역사, 철학 텍스트들을 통해 보다 정확하고 선명한 언어들로 이야기하게 되었다. 이런 활동들을 바탕으로 쓴 책이기에 돌봄의 의미와 가치, 효과에 대해 더욱 공감하며 읽게 된다.
또한 이 책의 백미는 뒤에 수록된 부록이다. 「돌봄 인문학 워크북」을 실어 ‘아이를 돌볼 때 떠오르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을 뽑아 직접 기록하게 함으로써 따로 모임에 참여하기 어렵거나 그동안 육아의 시간을 되돌아볼 여유조차 갖지 못한 부모들을 위한 지도 역할을 톡톡히 한다. 출산 당시의 기억, 자신의 어린 시절 돌봄의 경험, 나를 돌봐주었던 사람, 아이에게 꼭 해주고 싶은 것 등을 떠올리고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인문학적인 토양과 감각을 쌓게 해주는 시간이 될 것이다.
육아를 통해 깊어지고 성장하는 부모를 위하여
“돌봄과 호혜의 세상” 그리고 한때 아이였던 우리 모두를 위하여
우리 사회가 돌봄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양육자와 비양육자의 건강한 연대가 가능해질 때, 개인의 성취는 곧 사회의 성취로 이어질 것이다. 이 책을 먼저 읽은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이자 연세대 명예교수는 “돌봄과 호혜의 세상을 만들겠다”라며 돌아온 저자를 통해 “동지의 정을 느끼게 하는 따뜻한 책”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한국 여성의 현재를 예리하게 파고든 『82년생 김지영』을 쓴 조남주 소설가는 “이 책을 육아 동지는 물론 아이를 낳고 키울 욕구가 전혀 없는 이들도 읽으면 좋겠다”라고 밝힌다. “아이를 생각하는 일은 결국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위로하고 응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실제 아이들과의 접촉이 많지 않은 어른들에게도 ‘아이들’의 존재가 강렬하게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순간은 정지 화면으로 자세히 뜯어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거칠게 이야기하면 어른들의 마음속 어딘가에 자라지 않은 채로 있는 아이가 한 명 정도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 어쨌든 모든 어른들에게는 지켜주고 싶고,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한, 응원하고 싶은 아이의 이미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억하는 것은 양육자들뿐 아니라 비양육자들에게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300쪽, 「에필로그」 중에서)
이처럼 돌봄을 경험하고 공부하는 것은, 한때 아이였던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돌봄 인문학 수업』을 통해 우리 사회가 인간다움을 회복하고 일과 사랑, 성취와 돌봄이 양립하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