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까진 아니지만 - 명확히 설명 안 되는 불편함에 대하여
“그냥 그 얘기는 하지 말자. 말할 때마다 싸우니까.”
너와 이야기하면 나는 예민한 여자가 된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그것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을까요?
여성으로서 남성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명확히 설명 안 되는 불편함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배척의 눈빛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너무나도 쉽게 “너 페미니스트야?”를 묻는 이 세상에서 목소리를 내기는 더욱 조심스러워 졌습니다. 하지만 내가 무엇 때문에 불편한지는 꾸준히 고민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모든 여성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깊게 공부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앞장서 싸울 수는 없습니다. 다만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선택하고, 가까운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선택을 이해시키기 위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지 담담히 모색하고자 합니다.
“너 페미니스트야?”
평범한 연인이 불쑥 낯설어진 이유
행복을 깎아내리는 종류의 농담은 우리 주위에 굉장히 흔합니다. 특히 유부남들의 자조적인 농담이 대표적입니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에게 “지금이라도 자~알 생각해봐”라고 조언하거나 유부남에게 “에이, 행복하다고요? 수척해지신 것 같은데?” 하고 자기들끼리 깔깔거리거나.
이런 농담이 전혀 웃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서서 말하지 못하는 건, 예민한 사람처럼 보일까봐 혹은 ‘사회성이 떨어진다’ 같은 평가를 받게 될까봐 두려워서 입니다.
하지만 농담이라도 나의 배우자 혹은 가까운 사람을 우습게 만드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게 다름 아닌 여성혐오, 남성혐오이기 때문입니다.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거나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한 남성도 “나 여자 좋아해”라는 의사와 달리 여성혐오를 할 수 있습니다.
“여자 30대면 너도 이제 끝났네”라는 농담, “여성스럽게 머리 좀 길러”라는 조언, “애는 엄마가 키워야지”라는 환상, “밤늦게 다니면 안 되지, 너는 여자잖아!” 같은 걱정이 다름 아닌 여성혐오입니다.
이 문제는 사회적인 이슈이기도 하지만 나와 가까운 사람들과의 가치관 문제이기도 합니다. 남자친구나 남편과 이야기하다 보면 명확히 설명이 안 되는 불편함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말을 하면 싸울까봐, 헤어질까봐 혹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하고 싶은 말을 애써 삼킵니다.
어떤 부분 잘못됐다는 걸 말하면서 남자친구와 싸우지 않는 방법?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 때문에 불편한지, 어떻게 서로를 이해해야 하는지는 꾸준히 고민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불합리한 건 함께 생각해보고 서로 마음 상하지 않은 선에서 좋은 방법을 찾으려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우리가 사랑을 하고 있다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