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곰치에게 줄 수 있는 것
의사나 경찰관이 되는 것은 하나의 진로 결정이지만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 아닌 선택되는 것이다.- 폴 오스터
무언가가 되길 갈망하는 아뜩한 순간은 느닷없이 오기도 한다.
직장 생활 5년 차, 신입도 고참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였을 때였다. 서울 모 박람회에서 우리 팀이 개발한 제품을 전시했다. 하지만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윗선의 질책이 쏟아졌고 그걸 오롯이 견뎌야 하는 이는 프로젝트 책임자인 나였다. 전시회 마지막 날이었다. 장비를 빼고 뒷정리까지 끝내니 자정 가까이 되었다. 서버와 모니터, 케이블과 홍보 팸플릿이 잔뜩 담긴 상자를 차에 싣고 홀로 회사로 향했다. 인적 끊긴 시골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어느 촌가 창문에 문득 불이 켜졌다. 누르스레한 불빛이었다. 빛은 세상 무엇보다도 따뜻해 보였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다른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난 지금도 월급쟁이 생활을 하고 있다. 여전히 애면글면하며 산다. 나아지는 것도 별로 없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늘 글을 끄적거린다는 것뿐이다. 무언가에 관한 꿈을 꾸면서.
올해 예술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첫 소설집을 만들었다. 그간 수상한 작품 중 선정한 7편과 1편의 미공개 작품을 실었다. 시골 교차로에서 얻은 영감으로 쓴 〈소설이 곰치에게 줄 수 있는 것〉을 타이틀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