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 - 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
“푸치니의 음악은 죄의식을 부르는
달콤한 유혹이다”
오페라의 절정을 찬란하게 물들인 감상주의 마법사의
멜랑콜리와 노스탤지어의 근원을 찾아서
푸치니의 선율이 흐르는 이탈리아의 새벽을 걷다
- 명작의 탄생지로 떠나는 음악기행
-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이어지는 거장과 명작의 인사이트
- 내 인생의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오페라의 제왕. 푸치니에게 이보다 더 적확한 수식어는 없다. 오페라가 오늘날의 영화만큼이나 대중적인 여흥이었던 시절, 푸치니는 살아생전 명성을 떨치며 백만장자의 삶을 영위한 대작곡가다. 그러나 그는 과거의 인물이 아니다. 푸치니의 작품은 지난 세기 오페라의 마지막 절정기를 장식하는 데 머물지 않고 지금도 끊임없이 향유되며 재생산되고 있다. 오페라 극장들이 내놓은 ‘가장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 목록’에 푸치니의 3대 흥행작 <라 보엠> <토스카> <나비 부인>은 언제나 6위 안에 들며, 북미 오페라 공연 일수의 4분의 1이 이 세 작품으로 채워진다는 통계도 있다. 휴대전화 판매원 출신의 테너 폴 포츠는 오디션장에서 ‘잠들지 말라Nessun Dorma’를 불렀고, 콜드플레이는 내한 공연 당시 첫 곡으로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 mio babbino caro’를 연주했다. 각각 <투란도트>와 <잔니 스키키> 속 아리아다. 오페라의 시대가 지나간 지금, 어느 오페라 작곡가도, 어느 아리아도 이런 환대를 받은 적 없다.
『푸치니: 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은 푸치니의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오페라의 고향 이탈리아를 거닐며 그의 삶과 작품의 발자취를 좇는 특별한 여행기다. 여러 매체에 클래식 관련 칼럼을 기고하고 강의를 해온 유윤종 음악 전문 기자는 이 책에서 푸치니의 마력을 가감 없이 풀어냈다. 유윤종 기자는 푸치니가 영감을 받고 성장했던 장소로 직접 찾아가서 푸치니 작품에 응축되어 있는 푸치니의 경험을 추적한다. 루카에서 태어나 밀라노에서 데뷔한 후 잇따른 대작으로 성공하기까지, 그는 두 도시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며 거장으로 발돋움한다. 반평생의 거주 공간이자 <라 보엠>과 <나비 부인>의 탄생지 토레델라고를 거치면, <잔니 스키키>와 <토스카>의 영광이 고스란히 남은 피렌체와 로마에 도착한다. 푸치니가 그곳에서 느끼고 사랑했던 것은 그의 오페라에 ‘멜랑콜리’와 ‘새벽’이라는 구체적인 감정과 시간으로 남아 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아름다운 음악으로 응답할 것이다”
격정의 드라마로 전 세계를 매혹한 작곡가의 열정을 만나다
푸치니는 어떻게 자신만의 거대한 제국을 세울 수 있었나? 저자는 19~20세기 전환기 시대정신과 오페라 장르의 교차점을 대표하는 총아로 푸치니를 지목한다. 당시는 개인의 열정과 욕망, 환희와 슬픔을 정밀하게 표현하는 데 가치를 둔 시기였으며, 오페라는 개인의 음색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장르다.
유년 시절의 푸치니는 주의가 산만했으며(“푸치니는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바지를 닳아 없애기 위해서만 학교에 오는 것 같습니다”) 일탈로 점철된 폭풍의 사춘기를 보내고(담배를 사기 위해 교회의 파이프오르간의 파이프를 고물상에 팔았다) 성인이 된 후에는 친구의 아내와 눈이 맞아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는가 하면(“마님이 집을 나갔어요, 푸치니 선생과 함께 도망갔다고요”) 결혼을 하고도 바람을 피우는 바람에 애꿎은 사람을 자살에 이르게 하고(“가엾은 소녀, 그렇게 착하고 따뜻했던 아이가 이렇게 죽다니. 견딜 수 없다”) 원하는 스토리가 나올 때까지 대본작가를 들볶아서 그들의 사퇴 파동을 자초하기도 했다(“전 세계가 감동해서 눈물을 흘릴 만한 것을 내놓으시오. 투란도트의 운명을 생각하면 잠이 온단 말이요?”).
그럼에도 푸치니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삶을 살았다. 자신의 열정과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삶을 살펴보면 이 뻔뻔한 인물을 사랑해줄 마음이 좀처럼 일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환희와 슬픔을 마음껏 표현했다. 우리가 그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단 하나, 스스로를 극복하기 위한 끊임없는 시도와 노력뿐이다. 비평계와 대중 양극단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경쟁자와 후배의 장기를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한편 자신의 장기를 단단하게 다져나갔다. 동시대 예술계의 기류를 연구하고 파악하는 데 누구보다 빨랐고 오페라의 정묘한 디자인과 완결성에 대한 집념은 투철했다. 푸치니는 그렇게 자신의 국경을 넓혀나갔으며, 재능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받았다. 유럽 전역은 물론 아메리카 대륙의 미국과 우루과이에서 열린 ‘푸치니 전작 페스티벌’을 푸치니는 목격했다. 부와 명예를 한껏 누린 인생이었다.
음악으로 가득 찬 마사추콜리 호수에서 새벽을 듣다
<라 보엠>과 <나비 부인>의 탄생지와 <잔니 스키키>와 <토스카>의 배경지를 걸으며
예술가에겐 결핍이 있어야 한다고들 한다. 일찍 세상을 떠나거나, 궁핍하거나, 죽을 때까지 인정받지 못하거나, 오해를 받아 자리에서 쫓겨나거나, 평생 지병에 시달려야 한다. 실연의 상처가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하지만 푸치니는 아니었다. 푸치니는 명랑하고 친절하다가도 순간 먼 곳을 쳐다보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지곤 했다. 푸치니 자신도 “나는 멜랑콜리의 거대한 짐을 지고 태어났다”고 말했다. 결핍이라곤 없이 성장해서 오페라계의 새로운 황제로 부상하여 남부러울 것 없는 백만장자의 삶을 살았던 푸치니의, 그만의 서글프며 감미로운 선율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선천적인 것이었을 수도 있고, 아들의 성공이 눈에 보이는 순간 눈을 감았던 어머니에 대한 죄의식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푸치니가 사랑했던 장소가 그의 멜랑콜리를 심화시켰음을, 그곳의 새벽을 직접 보면 비로소 알아챌 수 있다.
견고한 음악 전통을 이어가는 고향 루카, 자유분방하고 혁신적인 운동이 일어나는 유학지 밀라노, 풍요롭고 세련된 문화가 꿈틀거리는 오페라 탄생지 피렌체 모두 푸치니가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도시였지만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장소는 토레델라고 마을이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목도하고 ‘귀신처럼’ 방황하던 때 발견한 평화로운 이곳을 푸치니는 터전으로 삼았다. 이곳은 그저 생활의 장소만은 아니었다. 푸치니는 급속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지상의 낙원. 상아탑’ 토레델라고와 사랑에 빠졌다. 오감이 가장 생생하게 깨어 있는 새벽에는 물새 사냥에 나섰다. 그리하여 토레델라고 마을의 호숫가 정경은 그의 대표 흥행작인 <라 보엠> <나비 부인> 속에 깊숙이 침윤된다. 푸치니에게 멜랑콜리는 짐이 아니라 동력이었다. 내면 깊이 자리 잡은 노스탤지어는 그의 손에서 선율과 화음으로 소환되어 작품 주인공들의 슬픔으로 세련되게 표현되었고 세계를 매혹했다.
푸치니가 반평생을 머물렀던 토레델라고, 그곳의 마사추콜리 호수를 여행한 후에라면, 푸치니를 듣는 독자의 마음속 무대가 조금은 넓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곧 그를 만나러 갈 독자에게 이 책의 저자가 들려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푸치니가 사랑한 토레델라고 새벽 정경을 느끼기 위해서는 밤이 늦도록 절대 ‘잠들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