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아름다운 나의 N잡 일지 - 애매해도 완벽하지 않아도 걱정 없이 잘 삽니다
“명함은 없지만 불안 없이, 행복하게 일합니다.”
세상을 바꿀 힘도, 세상에 나를 맞출 재주도 없지만
그럼에도 이 세상에서 내 자리를 찾는 법
-
일, 사람, 돈 걱정 없는 N잡 스토리
‘일’을 둘러싼 변화가 거세다. 퇴사 바람이 유행처럼 번지더니 사이드잡에서 N잡까지…… 사회 변화와 구성원의 달라진 사고방식이 불러온 새로운 풍경이다. 일에 대한 이러한 세태 변화를 온몸으로 여실히 보여주는 이가 있다. 바로 출판번역가,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유튜버, 강연가 등으로 다방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N잡러의 대표 주자 서메리 작가다.
첫 책에서 밝혔듯 그는 회사 체질이 아니라며 회사를 박차고 나온다. 당시 목표는 오로지 출판번역가로 독립근무자가 되는 것. 학교와 사회에서 배운 대로 ‘한 우물을 파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이번에도 우직하게 이 한 가지에 ‘올인’한다. 하지만 회사 밖 세상은 예상보다 더 낭만적이지 않았고, 말이 좋아 번역가 지망생이지 한동안 저축을 까먹고 사는 백수 신세를 면치 못한다. N잡을 시작한 건 거창한 청사진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돼서, 그러니까 고양이가 쥐를 무는 심정의 발로였다. 그리고 주변의 우려와 달리 이 ‘생계형 N잡러’는 이내 여러 일을 하며 자기다운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프로 N잡러’로 거듭난다.
그럴듯한 회사나 명함, 직함의 유효기한은 끝났다. 한 우물을 파야 성공한다는 공식도 효용을 다한 지 오래다. 자격 대신 일을 따내고, 직함 대신 경력을 쌓고, 궁극적으로는 원하는 일을 원하는 만큼 하면서 살아가는 작가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연스레 내가 가진 작은 관심과 재주로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하나의 우물이 다른 우물로 선순환을 이루고, 커리어를 쌓고 인연을 불리고, 작은 관심사와 흥미를 일로 연결하는 모습에서는 어떻게 N잡의 첫 삽을 떠야 할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또한 퍼스널 브랜딩 하는 방법, 새로운 우물에 도전할 때 필요한 것, 수익 파이프라인 만드는 법 등의 팁도 담겨 있다. 조곤조곤한 문체에 꼭지마다 일러스트 툰이 들어 있어 읽는 재미까지 쏠쏠하다.
세상과 껄끄러움 하나 없이 착 들어맞는다고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세상이 이상하거나 내가 이상하거나 둘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날도 많을 것이다. N잡은 세상과 나 사이의 이런 이질감, 빈틈을 메우는 역할도 한다. 책 내용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상한 세상에서 이상한 내가 N잡으로 아름다워지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아, 제목의 ‘아름답다’는 그 어원 중 하나인 ‘나답다’에서 그 뜻을 따왔다.
직업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대답하기 애매해서 오히려 좋아!
프로 N잡러의 슬기로운 직업생활
“어떤 일 하세요?”라는 질문에 어물쩍거렸던 경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말해봐야 잘 모를 것 같아서 그랬을 수도 있고, 하는 일이 마땅치 않아 민망함에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뭐라고 똑 부러지게 말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세상에서 점점 더 파이를 키워가는 중이다. 서메리 작가도 그중 한 사람이다.
“프리랜서인데, 다양한 일을 해요. 책도 쓰고, 번역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유튜브도 하고, 온라인으로 강의도 하고 있습니다.”
명료하게 말하기 애매해서 좀 난감할 때도 있겠지만, 이 애매함은 오히려 N잡의 미덕이다. 여러 개의 우물을 파두면 별개의 일로 여겨지던 것이 어느 순간 하나의 물길을 이루고 선순환을 만들어낸다. 번역, 글쓰기, 그림, 유튜브, 강연, 낭독 등은 처음에는 큰 관련 없이 시작됐지만 결국엔 시너지를 발휘하며 큰 성과를 가져다주었다. 뿐만 아니라 하나의 우물에 문제가 생겼을 때 다른 우물이 빈자리를 채우며 든든한 기댈 구석이 되어주기도 한다. 작가는 N잡을 하면서 더 이상 불안을 느끼지 않게 됐다고, 평안하고 충실하게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게 됐다고 고백한다.
애매하다는 건 무엇도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신이 가진 작은 관심과 재능을 퍼즐 삼아 부지런히 우물을 파다 보면 미래에 대한 불안은 한 걸음 물러나고 바라던 일상을 손에 넣는 날이 어느새 성큼 다가올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나다운 삶을 위한 작은 발걸음
‘하고 싶은 일을 찾아라.’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라.’ ‘꿈을 가져라.’……
‘한 우물을 파라’와 함께 오랫동안 진리로 여겨졌던 말이다. 그런데 도통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꿈에서 동기를 부여받을 수 없다면? 꿈은 꿈일 뿐, 현실과 너무 괴리가 크다면?
그럴 때는 좋아하는 일을 찾아 매진하는 대신, 꿈을 찾아 헤매는 대신, 싫어하는 일을 하나씩 지워가는 방식으로 접근해보면 어떨까? 혹시, 자기도 몰랐던 추진력이 발휘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서메리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작가는 스스로를 두고 ‘히어로가 아니라 빌런에 반응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조직생활이나 백수, 생활고 같은 인생의 빌런을 마주했을 때 거기서 벗어나고자 하는 절박함에서 큰 에너지를 얻는다는 것. 한 우물을 파라는 공식에 반기를 든 사람다운 재미있는 자기 분석이다. 도무지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세상의 공식을 따르기가 너무 힘이 든다면 이 같은 역발상에서 의외의 돌파구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듯한 무력감이 들 때 자신만의 추진력을 발견해 작더라도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는 방법이 책 속에 있다.
끈기는 없지만 내 일은 많거든요.
여러 가지 일로 자기 정체성 만들기
최신 트렌드에 민감하고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MZ세대의 장점은 때로 고스란히 단점으로 바뀌기도 한다. 끈기가 없다, 참을성이 없다, 인내력이 부족하다 등이 이에 속한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단점이기만 할까?
서메리 작가는 회사에 다닐 때만 해도 자기 부정이 심했다. 문과라서, 88만 원 세대라서, 기술이 없어서, 자꾸만 작아졌다. 하지만 회사 밖에서 여러 우물을 파면서 스스로를 긍정하게 됐고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그리고 처음으로 ‘시대를 잘 타고났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이 일 저 일에 관심이 많고, 그만두더라도 일단 해보는 것 자체가 도전이고 용기이지 않을까. 천직이 사라진 지 오래인데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판다는 건 도리어 미련한 일 아닐까. 그 어느 때보다도 새로운 일을 배우고 자신을 드러내기 좋은 환경이 갖춰진 지금, 여러 가지 일을 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정말 자기다운 길을 발견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