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나도 모를 때 - 생각이 많은 섬세한 당신을 위한 양브로의 특급 처방
인공지능, 유전공학, 인간복제 등의 최근 이슈까지 담아내면서도
진정한 인간다움을 고민하게 하는 독특한 고전
“우리 장르는 200년 전, 메리 셸리라는 19세 천재 소녀의 발명품이다.” 어떤 SF 작가의 고백처럼,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과학을 소재로 한 SF 장르는 놀랍게도 이 책으로부터 출발한다. 『프랑켄슈타인』은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과학 발전의 명암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작품이며, 괴물에 관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김으로써 오늘날 인공지능, 유전공학, 복제인간 등의 이슈에서 활발한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터미네이터》, 《블레이드 러너》, 《아이, 로봇》 등의 탄생에도 결정적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작가는 산업혁명 당시 큰 관심사였던 갈바니(Luigi Galvani, 1737~1798)의 생체전기 실험을 참고했고, 전기 · 화학 · 해부학 · 생리학 등의 발달과 당시 과학자들의 생명 창조에 관한 고민을 토대로, 자신의 여행 경험을 작품에 녹여냈다. 특히 19세기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인공생명체를 주제로 최근 논의되는 기본개념, 가령 전기자극, 세포배양, 줄기세포, 체세포 복제 등의 복잡한 과학적 이슈의 원형을 정교하게 배치해 넣었다.
또한, 괴물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독해가 가능하다. 인간 내부의 무의식이 실체화되어 주인에게 모반을 일으키는 ‘분신’의 관점, 인간의 비극적 성장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 관점, 폭력과 복수로 범벅이 된 괴물의 삶은 자신이 처했던 ‘사회 상황’의 산물이라는 관점,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가부장적인 욕망이 빚어낸 끔찍한 결과를 소설로 담아낸 것이라는 ‘페미니즘’ 관점 등이 있다.
최근 인공지능의 눈부신 발전으로 “창조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엄청난 능력을 지닌 피조물”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연구 중인 여러 ‘프랑켄슈타인 실험’이 결국 인류를 어디로 이끌어갈지 자못 궁금해진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생각거리와 울림을 주는 이 생생한 작품을, 현대지성 클래식에서는 『프랑켄슈타인』과 메리 셸리를 전공한 번역가의 꼼꼼한 번역과 깊은 해제를 담아 선보인다.
역사상 최초로 SF 장르의 문을 활짝 열어준 책
탐보라 화산 대분화 탓에 세계적으로 ‘여름이 사라진 해’로 유명했던 1816년, 연신 내리는 비와 추위로 나들이가 녹록지 않았던 어느 날, 시인 바이런(1788~1824)은 제네바 호숫가의 디오다티 별장에 모인 친구들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씩 써보자는 흥미로운 제안을 한다.
메리 셸리는 당시 산업혁명의 주제였던 ‘과학적 에너지 활용’, 특히 갈바니의 생체전기 실험에 평소 큰 관심을 보였다. 바이런과 폴리도리 같은 쟁쟁한 ‘별장 친구들’의 천재적인 입담에 경쟁심이 더해, 메리는 며칠 동안 생생한 꿈을 꾸게 된다. 한 과학자가 우연히 시도한 전기 충격으로 시체를 살려내는 짤막한 내용이었다가 거듭되면서는 직접 생명을 만들어내는 끔찍한 악몽으로 디테일하게 확장되었다. 연인 퍼시 셸리(1792~1822)는 이 아이디어를 적극 격려하고 응원했고, 메리 셸리는 1년 정도의 집필 기간을 거쳐, 이전에는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형태의 소설을 탄생시킨다(집필 시작은 19세, 완성은 20세).
『프랑켄슈타인』 출간 후 50년 가까이 지나서야 쥘 베른의 『지구에서 달까지』(1865)가 나왔는데, 사람들은 그제야 비로소, 과학적 가설과 추론에 기초한 장르를 SF(Science Fiction, 1851년에 용어가 처음 등장)로 따로 부르기 시작한다. 그 시작이 되는 작품이 바로 『프랑켄슈타인』이다. 이 작품은 1910년 발명가 에디슨이 만든 초창기 영화(10분 분량의 최초의 공포영화)의 소재가 되었고, 1931년에는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동명의 영화(70분 분량)로 제작되어 대중의 뇌리에는 목에 철심을 꽂은 괴물 이미지로 각인된다.
과학 발전의 명암, 그 원형을 엿보다
소설의 배경은 북극이다. 19세기 사람들에게 북극은 오늘날 우주 공간이나 다름없이 미개척지였다.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의 과학자가 시체를 조합해 소위 ‘인조인간’을 만든다는 이야기도 신을 벗어나 생명의 본질을 설명할 수 있다는 새로운 과학적 사고방식의 산물이다. 과학자가 인조인간을 만든 방법도 당시 최신 기술이었던 ‘전기’였다. 메리 셸리는 에라스무스 다윈의 생명체에 대한 가설과 개구리 뒷다리에 전극을 연결해 꿈틀거리게 만든 갈바니의 실험을 알고 있었고, 이를 자기 이야기 속에 집어넣었다.
메리 셸리는 이런 재료를 조합해 과학 발전의 성과를 드러내는 동시에 그 한계 역시 놓치지 않는다. 과학과 이성의 힘으로 만들어낸 새로운 생명체를 보고 당황해 달아나는 주인공의 모습은, 과학기술이 더욱 발전한 미래가 낙관적이지만은 않을 거라는 예감을 보여준다. 프랑켄슈타인은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었지만, 그 생명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결국, 그는 자신이 창조해낸 피조물에게 가족과 친지와 연인을 잃고 자신도 죽음을 맞는다.
소설에 등장하는 ‘괴물’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양하고 풍성한 독서 경험이 가능하다. 과학자가 괴물을 만들고 그 결과 비참하게 전락해간다는 서사로 『프랑켄슈타인』을 설명하기에는 괴물의 말과 행동이 소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낭만주의 시대라는 역사적 배경을 주목한 일반적인 해석에 따르면, 이 소설은 인간 내부에 억압되어 있던 무의식이 실체화되어 주인에게 모반을 일으키는 ‘분신’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본다. 결국, 주인공과 괴물은 한 몸에서 나온 두 개의 인격이라는 것이다. 또는 고독한 인간의 비극적 성장 과정을 그린 ‘어둠의 성장소설’로 읽을 수도 있다. 괴물은 내적으로는 순수하고 성장해가는 존재이지만, 사회가 용인하지 못하는 끔찍한 외양 탓에 끊임없이 소외당하고 배척받는다. 또는 당시 산업혁명의 여파로 ‘기계 파괴 운동’(러다이트 운동)이 확산하면서 폭력과 복수로 점철된 괴물의 사연 많은 삶 역시 그가 처한 사회 상황의 직접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남성 중심 사회에서 가부장적인 욕망이 빚어낸 끔찍한 결과를 소설로 담아낸 것이라는 ‘페미니즘’ 관점 등이 있다.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에 숨겨진 주인공이 다락방의 미친 여자인 ‘버사’이듯, 일제 강점기 조선의 아나키스트를 다룬 영화 《박열》의 실제 주인공이 박열이 아니라 ‘후미코’이듯, 『프랑켄슈타인』 속 주인공의 이야기를 뚫고 나오는 소위 ‘괴물’의 이야기에는 제목이 내세우는 주인공을 뛰어넘는 긴박성과 절실함이 있다.
창조자가 통제하지 못하는 피조물의 탄생
부제 “현대판 프로메테우스”가 보여주듯 『프랑켄슈타인』은 현대적 신화나 책임에 대한 우화로 읽을 수 있다. 창조주(신)와 피조물(인간), 부모와 자식, 예술가와 예술 작품, 혹은 과학자와 발명 및 발견 간의 윤리적인 관계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과학자가 자신의 결과물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저버린 탓에 끔찍한 사태가 벌어진다는 설정은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 IT, 핵무기, 유전공학 등 새 기술에 수반되는 끊임없는 위협이 19세기 초에 쓰인 이 소설에 이미 원형으로 제시되어 있는 셈이다.
최근 인공지능의 눈부신 발전으로 “창조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엄청난 능력을 지닌 피조물”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수를 두는 알파고의 등장은 이런 인공지능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연구 중인 여러 ‘프랑켄슈타인 실험’이 결국 인류를 어디로 이끌어갈지 자못 궁금해진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생각거리와 울림을 주는 이 생생한 작품을, 현대지성 클래식에서는 『프랑켄슈타인』과 메리 셸리를 전공한 번역가의 꼼꼼한 번역과 깊은 해제를 담아 선보인다. 이 책은 1818년에 나온 『프랑켄슈타인 혹은 현대판 프로메테우스』(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 이 책의 원제) 초판을 옮긴 것이다. 저자는 1831년에 개정판을 내면서 빅토리아 초기의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에 따라 당시 독자층 비위에 맞추어 등장인물의 성격을 온건하고 보수적인 쪽으로 바꾸었다. 그에 비해 초판에는 메리 셸리의 원래 의도가 더 자유롭고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