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 유품정리사가 떠난 이들의 뒷모습에서 배운 삶의 의미
“나는 마지막 이야기를 전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떠난 이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들
삶과 죽음, 그 무엇도 아름답거나 추하지 않다
25년 동안 1000번이 훌쩍 넘는 죽음을 마주했건만 아직도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고인과 만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말하는 유품정리사 김새별. 삶과 죽음의 한가운데서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된다는 전애원. 그들이 길어올린 우리 이웃의 마지막 순간들을 모아 펴낸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이 개정판으로 돌아왔다.
최근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통해 소개되어 죽음에 대한 의미와 고찰을 전하기도 한 이 책은 서로의 표정과 마음을 숨긴 채 살아가는 외로운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따듯한 시간을 선물할 것이다.
삶의 흔적을 지우고, 마지막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
“우리는 천국으로의 이사를 돕는 사람들입니다”
김새별 저자는 갑작스러운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삶과 죽음’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친구의 마지막을 정성스럽게 보듬어주는 장례지도사의 모습에 감명받아 장례지도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유족들의 요청으로 유품정리를 도와준 것이 계기가 되어 현재는 유품정리사로 15년째 살아가고 있다. 종종 식당에서 쫓겨나고, 사람들로부터는 눈총을 받기도 하는 직업이라 가끔은 서럽기도 하다는 저자는 자신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소개한다. 아무도 거두는 이 없는 외롭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흔적을 치우고 천국으로의 이사를 돕는 사람들이라고.
“오늘 아빠가 일하는데 식당에서 냄새난다고 밥도 못 먹게 하고, 보이지도 않는 귀신 때문에 사람들이 아빠를 싫어했어. 아빠 딸은 아빠한테서 냄새 안 나? 아빠한테 귀신 있으면 어떻게 해? 안 무서워?”
“아빠, 사람은 죽으면 모두 어딘가로 가는 거지? 아빠는 그 사람들 잘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거지? 그럼 그 사람들 아빠한테 되게 고맙겠다. 길 잃으면 무섭고 싫은데 아빠가 길 찾아주는 거잖아. 근데 왜 아빠를 무서워해?” (_본문 37~38쪽)
눈앞에서 목격한 죽음의 다양한 얼굴들
“이 세상에 이유 없는 죽음은 없다”
이 책은 한 유품정리사가 떠난 이들의 뒷모습에서 발견한 삶의 흔적이자, 떠난 이들이 세상에 남기고 간 마지막 이야기들을 모은 기록이다. 또한 모두가 외면했던 이웃들의 외로운 인생에 우리를 참여시킴으로써 아픔과 탄식 그리고 희망을 동시에 느끼도록 하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외로워서 더는 살 수 없다던 중년의 고독사, 막막한 현실에 맞서 고시원 단칸방에서 꿈을 키워가다 돌연사한 청년,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자식의 시신을 끌어안고 우는 부모. 저자는 매일 죽음의 현장으로 출근하며 다양한 죽음의 이유들을 마주했다.
“웬 할머니가 혼자 집을 보러 왔더라고. 차림새도 깨끗하고 곱게 늙은 할머니였지. 집 보러 온 날 바로 계약을 했어. 며칠 뒤 이사 들어온 날 이사 잘했나 들여다보러 내려갔지. 그때 할머니가 조용히 그러더라고.
‘할아버지, 내가 나이도 있고 여기서 살다 보면 저세상에 갈 수도 있는데…… 나 여기서 죽어도 돼요?’
우리 같은 늙은이는 다들 그렇거든. 이제나 죽을까, 저제나 죽을까, 자다가 조용히 죽어야 할 텐데, 그러잖아. 그래서 별 뜻 없이 괜찮다고 했지. 그런데 이렇게 빨리 죽을 줄 누가 알았누…….” (_본문 50~51쪽)
아름다운 마무리를 꿈꾸며 일상을 보내는 우리에게
“평화롭고 안온한 죽음이 찾아오기를”
우리는 큰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보거나 뉴스에 나오는 안타까운 사건을 접할 때면 함께 눈물을 흘리고 애도의 뜻을 표한다. 그리고 나와 내 소중한 사람들의 마지막을 잠시 상상해보게 된다. 이처럼 ‘죽음’은 바쁜 일상에 치여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삶을 돌아볼 기회의 순간을 허락한다.
할머니는 그렇게 내일을 준비했다. 연락 없는 자식들이며 풍족하지 못한 생활에 낙심하고 지나간 날들을 후회하는 대신, 새벽같이 일어나 폐지를 줍고 저녁이면 성경을 필사하고 가끔 복지관에 나가 종이접기를 배우면서 오늘을 열심히 살고 미련 없는 내일을 준비했다.
문득 부끄러워졌다. 내일을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오늘을 살지 못하고 어제를 후회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날 멋진 할머니를 만났다. (_본문 97~98쪽)
수많은 죽음을 마주하는 동안 저자는 마지막 순간을 평온하게 맞이하는 건 천 명 중 한 명에게나 주어질 수 있는 엄청난 행운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7계명’과 함께 일상의 소중함을 전달하는 이 책이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고 어제를 후회하는 사람들, 삶의 의지를 놓은 채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모든 이에게 안온한 죽음을 위한 작은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