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박물관
아쿠타가와상, 서점대상 수상 작가
오가와 요코 그로테스크 미학의 정점
잊힌 세계의 끝, 그곳에서 당신을 기다릴 생의 보관소
“사라진 영혼들의 유일한 안식처,
침묵 박물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육체를 잃은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
살아 있었다는 단 한 가지 증거,?
그 증거를 고요히 감싸 안는 침묵 박물관이 열린다
아쿠타가와상, 서점대상, 다니자키준이치로상, 요미우리문학상 등 일본 유수의 문학상을 석권하며 특유의 작품세계로 독자들을 매료시킨 일본의 대표작가 오가와 요코. 현실성이 결여된 몽환적인 공간 속에서 흔들림 없이 고요하게 자신의 본분과 열정 속으로 침잠하는 인물들을 그려내는 오가와 요코 세계관의 정수를 선사하는 소설 『침묵 박물관』이 출간된다.
『침묵 박물관』은 죽음에 따른 상실감과 이를 침묵으로 애도하는 유품, 그 유품을 보존하려는 박물관 사람들의 고투를 통해 비록 세상에 거창한 이름을 남기지 않는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생과 죽음은 언제나 고유의 존재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작은 마을에 새로 도착한 박물관 기사 ‘나’와 유품 수집에 생을 바친 괴팍한 노파, 투명하면서도 평온한 성품의 소녀, 그리고 충실한 정원사가 ‘침묵 박물관’을 개관하기까지, 세상과 외따로 떨어진 독자적 세계 속에서 죽음과 유품에 관련된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마을은 형언할 수 없는 그로테스크한 아름다움과 불안 속으로 빠져든다.
“내가 찾는 건 그 육체가 틀림없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가장 생생하고 충실하게 기억하는 물건이야.
죽음의 완결을 영원히 저지할 수 있는 그 무엇…….”
고즈넉하고 작은 마을, 한 박물관을 새롭게 개관하려는 노파가 있다. ‘나’는 이곳의 박물관 기사로 일하기 위해 마을을 찾는데, 알고 보니 노파의 계획은 죽은 사람들의 유품을 전시하는 ‘유품 박물관’이다. 노파가 그간 수집해온 유품들을 보존 처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죽음으로 떠난 사람들의 유품을 수집하는 업무까지 맡게 된 ‘나’는 이내 개관 준비에 열을 올리고, 마침내 ‘침묵 박물관’이라는 명패가 걸린다. 그러던 어느 날, 평화로웠던 마을에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침묵 박물관에 수집된 유품들은 침묵하지만, 그 존재 자체로 유품의 주인이 살아온 삶을 압축해 내뿜는 하나의 수어手語가 된다. 노파와 ‘나’가 수집하려는 유품은 평범한 유품이 아니다. “한두 번 입은 옷이라든가, 옷장에 모셔두기만 한 보석이라든가, 죽기 사흘 전에 맞춘 안경” 따위는 유품이 될 수 없다. 유품은 고인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그게 없으면 살아온 세월이 송두리째 무너져버리는 그 무엇”이다. 세금을 피하기 위한 불법 귀 축소술에 사용된 메스, 삼류를 면치 못하고 굶어 죽은 화가가 마지막 힘으로 짜내어 마신 물감, 외롭게 생을 마감한 할머니가 애지중지했던 개의 미라 등 유품 주인의 삶과 끈끈하게 유착되어 그 경계조차 모호해지고, 시간의 더께를 획득한 낡고 추레한 물건이다. 유품들은 필연적으로 오가와 요코 고유의 서늘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풍긴다.
여기에 노파의 이야기가 더해진다. 노파는 유품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동안 놀라운 기억력을 발휘하여 “문맥의 혼란도 모순도 말실수도” 없이 완벽하게 유품의 역사에 대해 구술한다. 또한 노파는 유품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떤 금기든 깨뜨릴 준비가 되어 있으며 도덕에도 얽매이지 않는데, 박물관 개관 준비와 유품에 대한 결정은 오직 스스로 만든 독자적인 달력에 따른다. 비록 삶과 죽음에는 어떤 규칙도 질서도 없었으나, 죽음 이후 남겨진 유품들은 노파가 구술하는 이야기와 달력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배열되어 박물관의 기록과 규율 속으로 편입된다.
“어쩌면 우리가 유품을 훔치고 나서 생긴 공백을 목격한 사람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망자가 가져간 거야, 하고 말이죠. …… 하지만 사실 유품은 천국에 가지 않아요. 그 반대죠. 이 세계에 영구히 남기 위해 박물관에 보존되는 거죠.”_(154p)
삶과 죽음, 아름다움과 추함, 선악의 경계가
‘침묵’ 속으로 사라진다
『침묵 박물관』 속에서 ‘침묵’은 닫혀 있지만 그 자체로 완결성을 지닌 세계를 상징한다. 마을에는 ‘침묵의 전도사’라는 수행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흰바위들소의 가죽 외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평생 완전한 침묵 속에서 사는 것을 이상으로 한다.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침묵의 전도사에게 비밀을 털어놓으면 그 비밀이 영원히 지켜진다고 믿는다. 자기 내부의 것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전도사들과, 바깥세상의 삶을 박물관으로 들여와 보존하며 관람객의 방문조차 달가워하지 않는 듯한 침묵 박물관. 두 이야기는 씨실과 날실처럼 엮이며,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근 세계를 형상화한다.
“전도사들이 추구하는 건 말의 금지가 아니라 침묵이에요. 침묵은 바깥이 아니라 우리 안에 존재하죠.”_160p
다양한 물질에 의해 분해되는 세계의
애틋한 흔적을 보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연이은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 유품들이 자아내는 그로테스크함에도 불구하고 오가와 요코가 그려내는 『침묵 박물관』 속 정취는 따뜻하고 포근하다. 이름과 특색이 없는 작은 마을과, 처음부터 ‘노파’ ‘소녀’ ‘정원사’ ‘박물관 기사’처럼 철저하게 역할로만 불리는 인물들은 마치 이들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삶도 죽음도 침묵 박물관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는 반복되는 일상일 뿐이다. 익명성 속에서 각자 맡은 역할에 정진하는 이들을 통해 ‘무엇을 통해 죽음을 완결할 것인가?’라는 묵직한 물음이 전해져온다.
어둠 너머에 어떤 세상이 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불안에 떨지 않았다. 우리는 유품에 대한 똑같은 정열을 공유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흔들림 없이 굳게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유품을 수집하고 소중하게 보존하는 한, 혼자 하늘 끝에서 굴러 떨어져 어둠 속으로 곤두박질칠 일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_1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