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에 한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 한글교실에서 만난 시와 치유, 꿈에 관한 이야기
“배울 수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평균 나이 80세, 한글교실에서 만난 성장과 치유의 이야기
여기 특별한 수업이 있다. 평균 나이 80세, 백발의 늦깎이 학생들이 모여 배우는 한글 수업이다. 평생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차마 주변 사람들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까막눈의 상태를 벗어나고 싶은 어르신들이 팔순이 다 되어 초등학생이 되었다. 평생 숨기고 싶던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한글을 배우면서 은행 일도 혼자 보고 동사무소에 가서 서명도 한다. 노래방에 가서 노래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못 배워서 한스러웠던 자신과 화해하고, 잘해주지 못했던 자식에게 미안함의 편지를 쓴다. 소설을 읽고 문학기행을 떠나기도 한다.
이 책은 비문해 어르신들이 한글을 배워가면서 쓴 시와 일기, 편지와 생활문, 자서전 등 직접 쓰신 70여 편의 글을 통해 비문해 어르신들이 ‘문해됨’에 따라 일어나는 여러 정서와 삶의 변화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숨김도 없고 꾸밈도 없는 어르신들의 글을 통해, 늦깎이 학생들의 성장과정을 따라가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지식을 가르치러 왔다가 지혜를 배워갑니다.”고 말한다. 어려운 시대, 고단한 삶의 순간에도 지지 않고 자신의 자리와 하루를 지켰던 어르신들의 강인하고도 유연한 마음은 삶에 지친 많은 이들에게 응원과 위로를 안겨줄 것이다.
“미안하다 아들아, 이 엄마는 공부가 하고 싶단다.”
눈물과 웃음이 담긴 글과 그림, 슬프고도 아름다운 인생 이야기
전쟁 때문에 학교를 못 가고, 딸이라서 공부를 안 시켰다. 돈 벌어 오빠와 남동생 공부를 시켜야했고, 어려서는 집안일을 돕고, 좀더 커서는 돈을 벌어 생계에 보태야했다. 먹고 사느라 바빠서 이제야 한글 공부를 시작한 할머니들. 할머니들의 시 속에는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과 같은 시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가 하면, 시집살이, 결혼생활, 자식과의 관계 등 버티고 감내하고 살아온 아픔과 고통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나이 들어서 겨우 자기만의 시간을 내어 글을 배우게 된 지금, 손주 돌보느라 몇 주째 글을 배우러 못 가게 되자 할머니는 고백한다. “미안하다 아들아. 이 엄마는 공부가 하고 싶단다.”
글을 알게 된 지금에서야 지난 남편의 편지를 읽고 상처만 준 딸에게 편지를 쓴다. 소설을 읽으며 자기 이야기인양 슬퍼하며 자신의 삶이 역사의 한 페이지임을 깨닫는다. 어르신들은 팔순이 되어 한글공부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삶을 위한 날개를 힘껏 펼친다. 한글공부를 시작한 어르신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정한 배움이란 무엇이고, 새로운 도전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줄 것이다.
“내 이름은 까막눈, 편지 쓰는 기 꿈이라오.”
한글교실이라는 씨앗 하나가 만들어가는 벅찬 감동
30여 년간 중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한 지은이는 ‘한글 교육’ 봉사를 시작으로 비문해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교육하면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제자들은 70대 중반부터 90대 초반까지 다양하다. 대부분 학교 문턱에도 못 가본 분들이다. 복지관에 한글을 배우러 오는 분들은 가장 연로하고, 가장 학력이 낮으며, 가장 여건이 열악하신 분들이다.
지은이는 어르신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간 까막눈으로 살아온 아픔과 거기서 벗어났을 때의 기쁨, 회복과 성장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비문해자가 문해자가 되는 것은 내면의 엄청난 변혁이다. ‘문해됨’은 글을 읽는 새로운 자신과 만나는 것이고, 이는 곧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행복과 성장이란 무엇이고, 삶을 사는 바른 자세란 무엇일까? 역사는 작은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씨앗 하나가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는다. 시작은 한글교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