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이이효재 - 대한민국 여성 운동의 살아 있는 역사

이이효재 - 대한민국 여성 운동의 살아 있는 역사

저자
박정희 지음
출판사
다산초당(다산북스)
출판일
2019-09-08
등록일
2019-12-24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39MB
공급사
알라딘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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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 가운데
단 한 명도 이이효재에게 빚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
아들종교에 빠진 조선의 딸로 태어나 남녀가 평등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친 1세대 여성운동가 이이효재의 삶과 운명

1924년, 가부장제 중심의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이이효재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교육에서 소외되고, 남편과 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꿈을 희생하는 여성들을 보며 언제가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결심했다. 이 책은 그 뒤 80년에 걸쳐 한 사람의 여성학자로서, 또 여성운동가로서 온몸으로 세상에 부딪혔던 이이효재의 삶을 기록한 역사서다.
이이효재가 우리나라 여성 인권사에 미친 영향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지대하다. 흩어져 있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한국여성민우회를 창립하고, 이화대학 안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학과를 설립했으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결성하여 일본군 성 노예 문제를 전 세계적으로 부각시켰다.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을 벌여 호주제가 폐지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만약 이이효재가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여성 인권 수준은 여전히 근대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 장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한민국에는 여성 차별과 가부장적 사고방식, 성 역할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이 만연해 있다. 아직 여성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제대로 된 권리를 인정받고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으려면 나아갈 길이 멀다. 그 먼 길을 나아가는 데 있어 이이효재의 이야기가 든든한 정신적 버팀목이자 동반자가 될 것이다.


“왜 우리 여성들은 이렇게 불공평한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가부장제의 구렁텅이에 빠져 희생을 강요당하는 여성들의 비극적인 현실을 마주하다

세상을 살다 보면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에 감사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예를 들어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지 않았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토요일 근무는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음식점이나 길거리에서 주변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담배 피우는 일도 허다했다. 물론 지금은 모두가 그게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찾아온 것은 아니다. 누군가 잘못된 사회적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목소리 높여 변화를 요구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평생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온 이이효재의 삶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924년 마산에서 태어난 이이효재는 빚 대신 소실로 팔려간 여성, 남편의 외도로 쫓겨난 여성, 시댁의 학대를 견디지 못해 도망친 여성 등 가부장제에 억눌려 살아가는 여성들을 보며 여성 교육의 중요성을 체감했다. 그래서 대학에서 사회학 공부를 할 때에도 어떻게 하면 지금 배우는 이 학문을 우리나라 여성들을 깨우치고, 남성 중심 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데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여성이 먼저 깨우쳐야 존엄한 인간으로서 대접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대학에 여성학과를 설립하고, ‘한국여성민우회’를 창립하다

6.25 전쟁이 끝난 뒤 이이효재는 이화대학에서 연구를 진행하며 우리나라 여성들의 낮은 인권 수준에 참담을 느꼈다. 1958년 서울의 기혼 여성 10명 중 4명이 아들이 없을 경우, 남편에게 첩이라도 얻어주어 아들을 낳겠다고 답할 정도였고, 가부장제의 영향이 강한 농촌 지역은 그 비율이 더욱 높았다. 심지어 비교적 높은 교육 수준을 자랑하는 이화대학의 학생들조차 더 좋은 조건으로 결혼하기 위해 진학한 경우가 있었다. 이에 이이효재는 “독립해서 혼자 살 자신이 있는 여자가 진정 평등한 혼인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여성의 경제적?심리적 독립을 강조했다.
이러한 이이효재의 노력은 이화대학 안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학과를 설립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모아 ‘한국여성민우회’를 창립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교육을 통해 권리의 중요성을 깨닫고, 행동을 통해 쟁취하는 여성운동의 기반을 닦은 것이다.

“남녀가 평등한 세상이 올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결성해 일본군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고,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을 벌여 호주제 폐지에 앞장서다

그러나 오랜 세월에 걸쳐 사회적 통념으로 자리 잡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를 무너뜨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민중의 다양한 목소리를 억압하는 군부 독재가 시작되면서 이이효재는 민주화 운동의 전면에 나서야 했다. 1978년 양심적인 교수들과 함께 군부 독재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준비하던 이이효재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끌려가 심문을 당하는 등 고생을 겪었지만,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학교에서 해직된 것을 기회로 삼아 여성학 공부에 매진하고, 여성단체들의 활동에 힘을 실어주었다.
1990년 이이효재는 동료 윤정옥과 함께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결성하고, UN을 찾아가 호소하는 등 전 세계에 일본군 성 노예 문제를 알리는 데 앞장섰다. 그렇게 시작된 수요집회는 현재 1,400회를 넘어 이제는 전 세계인이 지지를 보내는 대표적인 여성운동이 되었다. 특히 1997년 한국여성대회에서 선언한 <부모 성 함께 쓰기> 선언은 여성을 남성의 소유로 보던 호주제를 폐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 운동을 통해 우리나라 국민들은 남아 선호 사상의 문제점을 조금씩이나마 인식하고 개선하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아흔 중반에 들어선 이이효재는 여성이라는 화두를 ‘인간’으로 바꾸어 생명에 대한 존경과 사랑, 평화, 자유, 정의, 인권의 가치에서 남녀가 조화롭게 살아가는 사회를 꿈꾼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 내재된 사랑이 인간의 삶을 보람되고 가치 있게 만들 것이라 말한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고 그 과정도 쉽지 않겠지만 이이효재 같은 앞선 사람들의 노력이 오늘을 만들어냈듯이, 우리가 지금부터 노력하면 언젠가는 그녀가 꿈꾸는 조화로운 세상이 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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