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만 보태어도 세상은 아름다워집니다 - 아픔을 사랑하는 법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
진정한 자유와 이타적 삶이 둘이 아님을 보여주는 보각 스님,
삶으로 증명해온 불교의 핵심을 간결하게 풀어놓다
저자 보각 스님은 1974년 스님으로서는 최초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불교사회복지학 분야의 개척자다. 중앙승가대학에서 불교사회복지학과가 개설되며 교수로 임용, 35년이 지난 오늘까지 불교사회복지학을 가르쳐 왔다. 학자일 뿐만 아니라 실천가이기도 한 스님은 중증장애아동시설, 노인요양원 등을 설립하여 불교계 복지시설을 확충하는 데 헌신해왔다. 이 책에서 스님은 자신의 삶을 통해 증명해온 불교의 핵심을 쉽고 간결하게 풀어놓는다. 붓다의 출생에서 출가, 성도, 열반의 모습, 그리고 붓다의 가르침을 이어온 선사들의 경구들을 인용하여 불교란 무엇인가,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를 담았다. 결국 삶의 가장 큰 목적은 나와 타인을 향한 자비에 있으며, 그 자비를 실천할 때 마침내 자유로울 수 있음을 저자는 밝히고 있다.
‘불교계 명강사 탑 5’ 스님이 전하는 불교 강의
‘불교 참, 쉽습니다!’
불교를 안다고 하는 이들도 막상 불교가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면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저자 보각 스님은 택시기사와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기사가 스님에게 불교는 왜 이렇게 어렵냐고 물었다. 스님이 되물었다. “불교를 배워보긴 했습니까?” 기사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스님은 이 이야기에 빗대어,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음식을 맛이 있다 없다 말할 수 없다고 한다. 불교를 알려고 조금이라도 마음을 내면 그만큼 불교가 쉽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나아가 제대로 알지 못하니 불교적 삶을 실천하는 데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불교를 제대로 알면 삶이 달라지고 사회가 달라진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불교, 참 쉽습니다. 부처님 법문 중에 제일 유명한 법문이 ‘칠불통게七佛通偈’입니다. 일곱 부처님이 전하는 게송이란 뜻인데, 우리말로 풀면 이렇습니다. ‘모든 악惡은 짓지 말고 모든 선善은 받들어 행하라. 언제나 그 마음을 깨끗이 하면 그것이 부처님 가르침이다.’ 여기에 불교의 처음과 끝이 다 들어 있습니다. 조금 설명을 더하면, 날마다 악을 제어하고 선한 일을 키우면 마침내 선악이 없는 경계에 이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처음에는 선을 행하라고 하지만 나중에는 선도 행하지 말라고 합니다. 선을 행하려 노력하기보다 마음에 악한 생각이 없어지면 그게 선이라는 것입니다. 선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응병여약應病與藥, 병이 있으니 약이 필요하다는 뜻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선도 악도 없는 깨끗한 마음에 이르는 것, 그것이 곧 깨달음이자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깨달음은 별것 아니에요,
아픈 세상에 눈물 한 방울 보태는 것이죠
깨달음의 마지막 단계는 입전수수入廛垂手, 즉 세상에 나아가 사람들의 고통과 함께하는 것이다. 스님의 삶은 바로 입전수수 그대로이다. 스님에게 부처님 가르침의 끝과 시작은 ‘자비’이다. 부처님이 깨우친 후 보낸 45년 세월이 바로 ‘봉사’이며, 수행자라면 누구든 그 길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또 불교의 지식은 이미 인터넷에 차고 넘치므로 이제 현대사회에서 ‘스님’의 역할은 지식 전달자를 넘어 세상에 줄 것은 자비, 그리고 사람들에게서 자비의 마음을 이끌어는 것뿐이라고 강조한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다면 ‘사회복지사’로 오시지 않겠느냐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다.
삼전종합사회복지관 관장을 시작으로 사회문제로 시끄러웠던 원주 소쩍새마을을 인수하여 정상화시키고, 장애아동요양시설과 노인요양원을 세우는 등 스님의 실천적 행보는 넓고 크다. 아프고 힘든 사람만 보면 눈물부터 난다는 스님에게 어느 날 물었다. “스님은 왜 자꾸 우십니까” 스님이 답했다. “남의 고통에 눈물 부조도 못 하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픈 세상에 눈물 한 방울 보태는 일, 깨달음의 실천은 거기서 시작된다.
“우리 사회엔 공감 능력이 부족합니다. 소외 받고 아픈 사람들도 더불어 사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특별한 경제적 도움이 아니더라도 가슴 아파하고 눈물 흘려주고 하는 공감이 중요하지요. 설움을 함께 해주고 같이 살아가는 것이 사회복지입니다.”
모든 지혜의 시작, 사랑
공감하는 사회를 위한 제언
저자는 이 책에서 불교적 깨달음을 토대로, 인간으로서 겪는 삶에 대한 갈등 그리고 불화하는 세상, 사회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 ‘우리는 왜 늘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만 애쓸 뿐, 적은 것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려 하지 않을까’, ‘타고난 신분에 의해 귀천이 정해지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에 따라 귀천이 정해질 뿐’, ‘여러 악기가 어우러져 하나의 화음을 이루듯 닫힌 종교에서 열린 종교로’. ‘허깨비 놀음에 지나지 않은 사이버 공간의 세상, 상생과 순환의 진리 알면 극복할 수 있다’, ‘바로 지금 그 자리에서 할 일을 하는 것, 이 무상한 현실 속에서 영원을 사는 방법이다’ 등. 불교적 가르침이 녹아든 저자의 해법에는 공통적으로 타인과 공존하는 법이 녹아있다. 존재는 혼자 존재할 수 없는 법, 함께 잘 살고 함께 잘 죽는 것이 바로 존재의 이유이다. 우리는 삶에 대한 답이 아주 가까이에 있는데 그걸 모르고 온갖 고생을 한다. 그 답이 무엇일까. 저자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법화경 속의 이야기로 빗대어 말한다. 부자 친구가 가난한 이의 품속에 귀한 보배 구슬을 몰래 넣어두지만, 이를 모른 채 평생 고생만 한다. 부자 친구가 이 사실을 알고 탄식한다. “보배구슬을 너의 옷 속에 넣어줬는데, 너는 아직도 고생하며 살고 있구나. 그 보배구슬로 필요한 것을 얼마든지 살 수 있는데….” 그 보배구슬이 무엇인가.
“삶은 고苦라고 합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아 고통이 생깁니다. 그 고통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심하면서 지혜가 생깁니다. 그게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은 크고 특별한 무엇이 아닙니다. 일상에서 지금까지 잘못 이해하고 판단했던 것을 바로 보고 이해하고 행하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일상의 수행자 기도하는 스님,
잘못된 기도가 공동체를 망가뜨린다
저자는 불교계에서 법문 잘하는 스님으로 유명하다. 이른바 “법문 잘하는 스님 탑 5‘에 든다. 불교계 뿐 아니라 기업체, 관공서 등의 요청이 쇄도해 수많은 강연을 해오고 있다. 하루 7번 강의로 퀵 서비스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한 전무후무한 기록도 가지고 있다. 그 수입을 모두 남김없이 기부해온 스님은 그야말로 무욕無慾의 삶, 그대로다. 욕심내지 말고 만족하는 삶을 강조해온 스님의 가르침을 작사가 양인자 선생이 듣고 쓴 가사가 바로 김국환의 〈타타타〉이다. 강의와 법문, 사회복지 활동으로 사회와 소통해온 스님은 철저한 수행자로서 스스로를 단련한다. 매일 일과日課 수행으로 기도와 사경을 거르지 않으며, 법화경 사경은 현재 173권째에 이른다.
스님은 기도란 무엇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발원과 참회, 즉 원력을 세워서 노력하는 것이며, 잘못했을 때 부끄러워하고 그 잘못을 다시 안 하겠다는 다짐이라고 믿는다. 맹목적인 소원성취에 매달리며 기도하는 것은 그릇된 것, 부처님이 그런 기도를 들어주셨다면 그건 부처님의 잘못이라고까지 말한다. 기도의 힘은 노력하고 있으니 지켜봐 달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발휘된다. 왜! 노력한 것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우리 사회의 기도가 바르게 이뤄질 때 사회의 온갖 모순도 사라진다고 스님은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