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 신화 거꾸로 읽기 - 길 위에서 듣는 그리스 로마 신화
고(故) 이윤기(1947~2010) 8주기 추모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탁월한 번역가, 신화 연구가
이윤기 다시 읽기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이면
신화가 문화를 보이게 합니다”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탁월한 번역가, 신화 연구가, 고(故) 이윤기 작가. 작가정신에서는 이윤기 작가 타계 8주기를 추모하여, 그가 생전에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펼쳐온 소설, 에세이, 인문(신화)의 세 분야의 대표작 3종(『진홍글씨』, 『이윤기가 건너는 강』, 『이윤기 신화 거꾸로 읽기』)을 개정하여 출간하였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각 작품에 실린 의미를 현대적이고 미니멀한 감각으로 재해석하되, 이윤기 작가의 전방위적 사유와 인문 정신이 오롯이 담긴 표지와 판형으로 재단장했다.
이 땅에 그리스 로마 신화의 붐을 불러일으킨 이윤기가 제시하는 『이윤기 신화 거꾸로 읽기』는 기존의 신화 해설서가 교양지식으로서의 당위성만을 내세워 현실과 동떨어진 따분하고 지루한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 시대 삶의 현장에서 신화의 의미를 되살려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책이다. 저자 스스로 그동안의 저서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흡인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한 『이윤기 신화 거꾸로 읽기』는 그동안 발로 뛰며 취재해온 각종 신화 관련 자료들을 집대성하여 현대 문명의 한복판에 고스란히 살아 있는 신화의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펼쳐내고 있다. 박물관, 의회 건물, 미술관은 물론이고 백화점, 과일 가게, 껌나무, 화장실 표지판, 군의관 계급장, 금강 역사 등 지금 우리 시대에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문화현상에서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이 남겨놓은 풍부한 신화의 유산이 어떤 식으로 현대인과 현대 문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명쾌하게 보여준다. 서울 신세계 백화점의 외부 장식과 파리 과일 가게의 밑 뚫린 바구니에서 풍요의 뿔 ‘코르누코피아’와의 연관성을 읽어낸다든지, 군의관 계급장에 나타난 뱀의 상징이 그리스 신화의 아스클레피오스 신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추적해내는 뛰어난 통찰력은 이윤기가 왜 “이 시대 최고의 신화 연구가”로 불리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최고의 신화 연구가 이윤기가 제안하는 새로운 독법,
‘신화 거꾸로 읽기’!
현대 문명과 문화의 원천, 신화!
우리 삶 속에 녹아 있는 문화 현상을 통해
신화의 흔적과 그 의미를 역추적하다
제우스와 헤라, 아프로디테와 에로스, 헤라클레스, 파에톤, 이아손, 아폴론……. 만국의 신화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이들에게 읽혀온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리스 로마 신화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마치 모두가 이야기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고전과 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한다고 해도 그 내용을 다 기억할 수도 없거니와 시간이 흐르면 금세 낯선 인명과 지명들 때문에 헷갈리기까지 한다. 수없이 많이 듣고 이야기되어 왔는데도 왜 뇌리에 각인되지 않는 걸까?
이러한 신화 읽기와 이해의 방식에 문제제기를 한 것이 바로 『신화 거꾸로 읽기』다. 저자 이윤기는 신화가 단지 남의 나라 옛날이야기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일반적 인식이 자리 한 데에는, 기존의 신화 해설서가 교양지식으로서의 당위성만을 내세워 현실과 동떨어진 따분하고 지루한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이 시대 삶의 현장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신화의 의미를 되살려내지 않는 한, 그 같은 물음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 스스로 자신의 저서 중 가장 대중적인 흡인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한 이 책은 그동안 발로 뛰며 취재해온 각종 신화 관련 자료들을 집대성하여 현대 문명의 한복판에 고스란히 살아 있는 신화의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펼쳐내고 있다. 독자를 앞에 두고 술술 풀어나가는 특유의 담백한 이야기 솜씨와 영국, 프랑스, 그리스, 터키 등에서 찍어온 현장감 넘치는 올컬러 자료 사진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그동안 신화를 부담스러워했던 독자들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박물관, 의회 건물, 백화점, 과일 가게, 화장실 표지판, 군의관 계급장……
‘지금 여기’의 문화 현상들에서 신화의 흔적을 찾아내어
특유의 담백한 문체로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가는 신화 이야기
터키 이스탄불의 ‘하기아 소피아’(성 소피아 성당) 광장 지하 저수고. 이곳에서 이윤기는 흥미로운 고대 석상을 발견한다. 기둥 받침으로 쓰인 이 석상이 슬쩍 보기만 해도 모두 돌로 변하게 한다는 무시무시한 메두사의 머리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물을 조금만 가두어도 바로 잠기게 되는 슬픈 운명을 지닌 이 석상은 왜 이곳에 놓이게 된 것일까? 그뿐만이 아니다. 6세기, 동로마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치세에 만들어진 이 지하 저수고를 떠받치고 있는 336개의 기둥들은 그리스 신전의 기둥을 뽑아다 쓴 것이라고 한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이로써 ‘기독교에 의한 그리스 고대 종교의 죽음’을 상징하는 징표로 삼았던 것이다.
저자의 시선은 유럽의 건축물이나 박물관 안의 미술 작품에만 머물지 않는다. 서울 ‘신세계 백화점’의 외부 장식물(풍요의 뿔)과, 불교에 영향을 미친 간다라 불상 등에서도 그리스 로마 신화의 상징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저자는 트로이아 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에게 패배한 아이네이아스 장군이 로마에 정착한 후 그리스 신화를 수입하여 제국의 정통성을 확보하게 되는 이야기, ‘무사’(Mousa, 영어로는 ‘뮤즈’)들의 탄생 스토리를 통해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각한 예술의 모습과 전승 문화의 발자취 등을 추적해나간다.
현대 문명의 원천이자 인간 정신의 원형, 신화!
우리는 신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로마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대리석상 <니오베의 딸>은 고대 그리스 미술에서 최초로 등장한 누드다. 저자의 상상력은 조각가가 의도적으로 등에 박힌 화살을 뽑느라 안간힘 쓰는 니오베의 상을 형상화한 것이 아닌가 하는 데에 이른다. 어깨에서 옷이 흘러내려도, 그래서 중요한 것이 노출되어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저자는 신을 능가한다는 자만심 때문에 일곱 아들과 일곱 딸을 모조리 잃는 니오베에 얽힌 비극의 드라마를 들려주고 그 끝없는 슬픔을 이해할 때 <니오베의 딸>을 더욱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유럽 여행 중에는 병원이나 약국의 표지에 ‘뱀’의 상징이 사용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나라 군의관의 계급장에도 뱀 두 마리가 지팡이를 기어오르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를 통해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사자(使者)였던 뱀이 지닌 재생과 순환의 이미지와 더불어, 원시시대 파충류에 대한 인간의 공포에서 비롯된 ‘어둠’의 상징, 지상(빛)과 지하(어둠)를 마음대로 드나드는 영물이라는 이미지에서 비롯된 ‘중심’의 상징, 위대한 장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와 폴뤼이도스의 이야기에 나오는 ‘예언’의 상징으로서의 뱀의 이미지를 살펴본다. 또 파리에 있는 로댕 미술관에 갔다가, 인간이 처한 극단적인 절망의 상황을 형상화한 로댕의 작품 <다나오스의 딸> 앞에서 한동안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던 체험, 테세우스의 아들 히폴리토스를 살려낼 만큼 대단한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였지만, 정작 그의 탄생이 어머니의 죽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아프로스(거품)가 빚어낸 여신이며, 따라서 아름다움이란 사실 거품과 같은 것이라는 통찰에서는 왜 신화가 온갖 희로애락과 부정과 비리, 질투 등 인간들의 삶과 가장 많이 닮아 있는 인간 정신의 원형이라 불리는지를 깨닫게 한다.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이면
신화가 문화를 보이게 합니다”
1999년 어느 날, 이윤기는 파리의 한 아름다운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그와 동행했던 안내자는 그 건물이 어떤 목적으로 지어진 것인지 그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지붕 위로는 금빛 리라(수금)를 든 남성의 청동상, 즉 예술의 신 아폴론이 보였다. 그 옆에는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말 페가수스가, 건물 옆으로는 아홉 무사이들이 새겨져 있다. 파리의 오페라 극장이었던 것이다.
『신화 거꾸로 읽기』는 이와 같이 ‘상징’으로서의 신화 읽기라 할 수 있다. ‘상징’을 이해하지 못하면, 유럽 박물관의 대리석상 앞에 서는 일은 까막눈이 돌덩어리를 쳐다보는 일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하는 저자는, 해박한 지식과 통찰, 소설가답게 풍부하고 생동하는 입말체로 예술 작품을 비롯하여 일상적인 조형물에 이르기까지 과거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고유한 의미와 가르침이 깃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이면, 어쩌면 지금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저마다 숨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주어진 정보만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그 신화적 상징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이윤기에 따르면 신화는 곧, ‘이야기의 어린이’, 즉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인류의 어린 시절 이야기이고, 신화를 읽는다는 것은 그러한 귀중한 인류 문화의 젖줄에 다가가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로마 국립 박물관에 있는 저 머리 없는 대리석상은,
우리가 말을 걸지 않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리가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아무 말도 걸지 않습니다.
나는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근 한 시간 동안이나 말을 걸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때 그 대리석상이 들려준 말이 있습니다.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다. 하지만 고통과 눈물의 씨앗일 수도 있다.”
_351~3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