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의 용소년 - 한국 근대 SF 단편선
한국 최초의 단편 SF <K박사의 연구>에서부터
1930년대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화성소설 <천공의 용소년>까지,
한국 근대 SF의 뿌리를 찾아서!
지구 인류보다 700년 정도 문명이 앞선 화성 사람들, 그중에서도 가장 천재적인 과학자 ‘별 박사’와 그를 따르는 용감한 화성 소년 ‘한달’의 지구 탐험 이야기. 어느 날 지구로부터 무선 신호를 받은 별 박사는 목숨을 걸고 일생의 과업이던 지구 탐사를 결심한다. 이에 별 박사로부터 공부 중이던 용감한 ‘한달’ 소년은 자기도 데리고 가 달라고 떼를 쓰는데, 결국 긴 우주여행 끝에 당도한 지구에서 두 화성 사람은 놀라운 풍경을 보게 된다.
“저것이 무엇일까요! 저 몽둥이 같은 것이?”
“아이고! 저것 보아요, 끔찍끔찍하기도 합니다. 저희끼리 서로 찔러 죽이는군요!”
<천공의 용소년> 발표 88년 만에 최초로 단행본 출간!
또한,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 근대 문학의 선구자 김동인은 SF 장르에서도 <K박사의 연구>를 1929년에 발표하며 한국 최초의 단편 SF로 그 이름을 남겼는데, 현대 한국어로 새로 다듬어 장르 선구자의 작품을 제대로 다시 감상해 본다.
이에 보태어, ‘투명인간’을 연구하는 과학자의 유쾌한 복수극 <소신술>과 고전 미스터리와 SF를 결합한 <삼대관의 괴사 사건>까지 수록해, 작은 책자이지만 한국 근대 SF의 진수를 소개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했다.
황정은, 미야자와 겐지 그리고 한국 근대 SF
《천공의 용소년》은 일제 강점기에 발표된 한국의 근대 SF 단편을 모은 책입니다. 순수 창작물도 있고 번역작도 있지요(번역작의 경우 원작을 찾아내지 못했거나 추정 상태인 경우만 수록되었습니다). 오래된 이야기들입니다. 조금 지나면 발표 백 주년을 맞이할 작품도 있고요. 이런 책을 왜 읽을까요. 오래된 장르 소설을 읽는 건 생각보다 지지부진한 경험일 확률이 높은데 말이죠. 세월이 흘러 구닥다리가 돼 버린 트릭을 선보이는 오래된 추리소설에 비하면 SF의 상황이 낫다고도 할 수 있지만, 독자로서는 수십 년 전의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 이미 익숙해진 세계관을 선보이는 작품을 읽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습니다. 보통은 문학사적인 이유로 읽겠지요. 사랑하는 장르의 시원을 찾아가는 종교적인 경험이랄까요. 이러한 문학사적인 측면은 권말에 수록한 해설을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사실 이 역사가 꽤 재밌습니다. 근대 한국 장르 소설의 역사는 아직 미싱 링크 투성이여서 연구는 물론이거니와 독자 처지에서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도 많고요. 누군가 이 시대의 장르 소설에 대한 장르 소설을 쓴다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다시 논점을 ‘왜 읽는가’로 되돌려 보겠습니다. 장르의 시원을 기꺼이 찾아가려는 ‘마니아’가 아닌 독자들도 이 오래된(그리고 거의 잊힌) 소설들을 재밌게 읽을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스타일 때문이죠. 인물들의 대사는 곰살맞고 능청스러우며, 구어체와 문어체를 구별하는 확연한 경계선이 없이 낭만적으로 퍼져가는 문장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현대 한국 소설들에서는 거의 볼 수 없지요. 당연히 시대가 바뀌었으니 구식 문장을 쓰지는 않는다는 식으로 간단히 생각할 문제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 시대에도 이러한 특성을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거든요. 황정은의 소설 《백의 그림자》에서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대사를 생각해볼 수 있겠지요. 문어체의 특성을 흡수한 《백의 그림자》 속 대사들은 서로 사랑하는 두 인물이 상대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자기들 사이에 두는 적절한 거리감을 잘 보여줍니다. 멋진 스타일이죠.
‘한국-근대-SF’라는 스타일
《천공의 용소년》에서 이러한 스타일을 가장 잘 구현한 작품은 역시 김동인이 쓴 <K박사의 연구>입니다. 특히 이 단편의 도입부는 지금 당장 어디 지면에 발표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어설프게 복고풍 분위기를 내려는 아류작들과는 수준이 다르죠. 두 인물이 대사를 주고받는 리듬부터가 남다르고, 어느 부분에서 독자에게 한 방 먹이면서 웃겨야 하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두 인물의 캐릭터도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제시되며, 도입부를 끝맺을 때도 충격적인(?) 주제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게 만들죠. 이 좋은 짜임새가 은근히 곰살맞은(지금 시점에서 보면 단어 선정부터 남다른) 대사 속에 잘 들어차 있습니다. 대사 속에 스타일을 담는 게 어떤 건지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코믹하고 능청스러운 이 단편에서 김동인은 SF를 어떻게 써야 할지를 잘 보여줍니다. <K박사의 연구>는 여러 SF 공모전의 심사평에서 자주 목격되는 주문을 잘 소화하고 있거든요. 무슨 주문이냐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무슨 소재를 쓰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계속 읽고 싶게 만드는 ‘소설’을 써 달라.”
표제작 <천공의 용소년>은 또 다른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이번에는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죠. 《은하철도의 밤》으로 유명한 미야자와 겐지입니다. 지구를 향해 우주선을 타고 떠나는 두 화성인의 이야기는 오래된 동화 풍의 문장 속에서 약간 사이키델릭하게 빛이 바랩니다. 이 빛바랜 느낌은 작품의 우화적인 특성을 강화시켜 현실의 영향력을 줄이고 판타지의 영역을 일찌감치 마련합니다. 작품이 발표될 당시에는 이러한 복고풍의 힘은 가지지 못했겠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어쩌면 우연히) 얻게 된 거죠. 작품이 담고 있는 내용이나 문장의 매력을 보았을 때 <천공의 용소년>은 1급의 작품으로 칠 수는 없습니다만, 화성인 박사와 소년 간에 주고받는 대사의 느긋한 리듬이나 고풍스러운 단어 선정은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이는 일종의 증거가 아닐까요. 1급이 아닌 소설에서도 ‘스타일’은 매력적으로 작동한다는 증거죠.
<소신술>은 문장보다는 배경이 재밌습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있다고 할까요. 한국 근대 창작 소설인데 배경은 중국이고 등장인물들도 (국적 불명의 1인을 제외하면) 다 외국 사람입니다. 기본적으로는 투명인간 스토리인데, 그보다도 악당을 응징할 때의 연출이 재밌습니다. 유럽풍의 블랙 코미디라고 할까요. 마침 악당이 서양인이기도 하고, 여러모로 국내 창작물로서는 유독 서양의 흔적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번역 작품인 <삼대관의 괴사 사건>도 그런 느낌을 주는데, 사실상 미스터리 소설에 더 가까운 이 단편에는 아쉽게도 캐릭터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본격 미스터리 풍의 겉모습에 SF를 접목시키려 한 시도를 체크하는 정도로 충분합니다.
오래된 SF 단편들을 담은 작은 책 《천공의 용소년》 속에는 이렇게 조금 특별한 매력이 담겨 있습니다. 많은 독자들에게서 잊힌, 그러나 여전히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을 듯한 복고의 매력 말이죠. 이는 새로운 발견이 아닙니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어딘가 과도해 보이는, 잉여의 단어들이 장식처럼 문장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근대 소설의 문장은 외국에서는 이미 많이 보아 온 취향입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소설’은 아직도 살아 있지요. 또한 그 매력적인 스타일은 일종의 트레이드마크로 남아 코니 윌리스 같은 후배 작가들에게 영감을 심어주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근대 문학도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특히 환상과 미지의 영역을 향해 가는 SF-판타지-미스터리라면 좀 더 재밌는 결과물을 보여주지 않을까요. 이번 단편집으로 물꼬를 튼 한국 근대 장르 소설 재조명 작업이 꾸준히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작품 해설
한국 과학소설의 여명기
‘SF(Science Fiction)’ 문학은 그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명백하게 근대 서양의 산물이다. 물론 그 연원은 매우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하는 학자들이 많이 있지만(예를 들어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1726)나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1516), 혹은 《성경》에도 SF적인 발상이나 묘사가 들어있다는 견해), 오늘날 작가 및 독자층에서 문학의 다른 분야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독립적인 영역을 구축한 ‘장르 SF’는 사실상 근대의 태동과 함께 형성된 것이다.
근대 이후 문학은 물론이고 영상매체를 비롯한 주요 문화예술 매체 전반에서 SF가 가장 융성하고 있는 곳은 미국, 또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영어문화권이다. 그러나 그 토대를 처음 쌓은 인물은 프랑스의 쥘 베른이며 바로 뒤를 이어서 영국의 H. G. 웰스가 이 분야의 질적 성숙에 크게 이바지했다. 쥘 베른이 산업혁명 이후 눈부시게 발전한 과학기술들을 모험담과 결합해 일종의 계몽적 역할을 맡았다면(《해저 2만리》(1870), 《80일간의 세계 일주》(1873) 등), H. G. 웰스는 SF적 설정에 통렬한 사회 및 문명비판의 메시지를 담아 처음으로 인류에게 ‘현대 문명의 불길한 전망’을 총체적으로 자각하도록 일깨웠다(《타임머신》(1895), 《우주전쟁》(1898) 등).
이 두 작가에 힘입어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SF 문학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일본과 중국을 거쳐 우리에게도 소개되기 시작했다. ‘과학소설’이 처음으로 이 땅에 선을 보인 것이다.
우리말로 번역된 최초의 SF는 1907년 《태극학보》에 연재된 《해저여행기담》으로, 원작은 쥘 베른의 《해저 2만리》(1870)이다. 《태극학보》는 1906년부터 동경에서 발행된 재일유학생들의 학술잡지인데, 《해저여행기담》은 처음에 박용희의 번역으로 시작되었다가 도중에 ‘백락당’, ‘모험생’ 등으로 옮긴 이가 익명으로 바뀌다가 결국 결말을 맺지 못하고 11회를 끝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그 뒤 1908년에는 신소설의 개척자 중 하나인 이해조가 다시 쥘 베른의 원작을 번안하여 《철세계》를 냈는데, 이 작품의 원작은 《인도 왕녀의 5억 프랑》(1879)이다.
한편 1912년에는 역시 신소설 작가인 김교제가 《비행선》이라는 번역소설을 발표했다. 원작은 미국 작가 프레드릭 밴 R. 데이가 통속소설 주간지 《New Nick Carter Weekly》에 1907년 3월 16일부터 4월 20일까지 총 6주간 연재한, 닉 카터를 주인공으로 한 연작물 가운데 1~4회분에 해당한다. 1908년에 발간된 중국어 번역본인 역자 미상의 《신비정》을 중역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들을 필두로 다수의 SF, 혹은 당시에는 SF로 소개되지 않았지만, 오늘날 SF의 범주로 묶을 수 있는 저작들 다수가 잇달아 이 땅에 선을 보였다. 대표적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던 체코 작가 카렐 차펙의 희곡 《R.U.R.》(1920)을 들 수 있는데, 이 작품은 ‘로봇(robot)’이라는 말을 세계 최초로 낳은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박영희가 1925년 잡지 <개벽>에 번역, 연재했다.
일제의 조선 식민지 정책이 점점 가혹해지고 우리말은 그 세력이 위축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이 땅의 지식 청년들은 일어판으로 된 책을 주로 읽게 되었다. 그런 때문인지 해외 SF가 우리말로 번역된 기록은 1930년대 이후로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며, 창작물 역시 특별히 전해지는 기록이 없다. 그러다 보니 번역이나 번안물이 아닌 창작 SF는 과연 어떤 작품이 한국 최초이며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 연구가 많이 미흡한 실정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김동인이 1929년에 발표한 단편 <K박사의 연구>가 한국 최초의 창작 단편 SF로 유력하다. 한국 근대 문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김동인의 유쾌한 이 작품은 당시 서구의 어떤 SF 잡지에 기고했어도 ‘동양적 정서와 서양 과학이 빚어낸 통렬한 블랙코미디’라는 떠들썩한 추천사를 받으며 수록되었을 것이다.
한편,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허문일의 <천공의 용소년>은 방정환이 펴낸 《어린이》 1930년 11월호에 수록되었는데, 번안 작품으로 추정되지만 원작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게다가 오랫동안 ‘허문일’이 방정환의 많은 필명 중 하나라고 여겨져 왔지만, 동시대 농민문학 운동에 앞장서며 많은 시와 소설을 발표해 온 ‘허문일’이라는 주장도 있어 여러 방면으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어쨌건 <천공의 용소년>을 비롯해 어린이 잡지에도 근대 문학의 태동기부터 SF 작품이 발표되기 시작한 것은, 오늘날 한국문학계의 동화와 어린이 청소년 문학 분야에서 독립된 장르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SF의 초창기 맹아적 시도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과학조선》은 일제강점기에 나왔던 대표적인 대중용 교양과학 잡지이다. 이 잡지에는 ‘과학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작품이 수록되었는데, 번안작은 물론이고 미완에 그쳤지만 창작물의 연재도 시도된 바 있다. 《과학조선》 1935년 11월호에 실린 단편 <삼대관의 괴사 사건>은 ‘과학소설’이라는 별제만 붙었고 작가 이름은 빠져있다. 이 작품은 1930년(쇼와 5년) 일본의 《과학화보》 3호(또는 3월호)에 실린 노부오 지로의 동명 작품을 번역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밖에 방인근의 <여신>, 그리고 번안작 <제3의 세계> 등이 역시 ‘과학소설’이라는 표제를 달고 연재가 실렸으나 모두 몇 회 가지 못하고 중단되었다. <여신>의 경우는 과학소설이라고 할만한 내용은 채 등장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멈추었기에 창작 SF 문학의 측면에서 보면 아쉬운 작품이다.
《신시대》는 일제강점기 말기,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일본의 군국주의를 부추기는 편집 방향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던 잡지이다. 이 잡지에도 SF로 볼 만한 작품이 몇 있는데 예를 들어 ‘미래 전쟁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실린 <태평양의 독수리>(1941)는 신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이 적군을 격파한다는 내용이다. 한편 같은 잡지 5월호에 발표되었고, 이 책에도 수록된 필명 남산수의 <소신술>(1941)은 H.G.웰스의 <투명인간>과 비슷한 설정을 취한 전형적인 SF 단편이다.
이 밖에도 일제강점기 조선의 SF 문학 관련 작품들은 다수 찾아볼 수 있겠지만, 그에 앞서 ‘SF’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한 번은 짚어봐야만 한다.
SF는 판타지와 함께 ‘환상서사(fantastique)’라는 하나의 테두리로 묶을 수 있다는 입장이 있는데, 이걸 수용한다면 그다음으로 SF와 판타지는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에 대해서는 ‘현실 세계의 자연법칙을 그대로 따르는가’의 여부로 구분한다는 편의적인 접근이 가능하지만, 명쾌한 해법이라 할 수는 없다. 게다가 장르 간의 경계가 모호한 작품인 경우도 많다.
신채호가 1928년에 발표한 <용과 용의 대격전>은 일단 우화적 판타지로 볼 수 있으나 그 스타일은 1960년대에 서양 SF계에서 등장한 뉴웨이브 SF와 유사한 면이 있고, 또한 체코의 카렐 차펙이 1936년에 발표한 장편 《도롱뇽과의 전쟁》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현실 세계의 국제정치를 대상으로 직접적 묘사를 담은 텍스트라는 점에서 SF 우화로 볼 것인지 논의할 여지가 있다. 결국 SF의 정의와 장르론에 대한 상당한 정도의 논의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논의들을 염두에 두고 보면 여러 작품이 눈에 띄는데, 그중에 위에서 언급하지 않은 몇몇을 추가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924년에 박문서관에서 출간된 《월세계 여행》은 신일용 번역이며, 원작은 쥘 베른의 <달나라탐험>으로 추정된다.
1926년에 게일과 이원모가 공역해 낸 《일신양인기》는 R.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1926년에 나온 잡지 《별건곤》 창간호에는 《팔십만 년 후의 사회》 연재 1회가 영주 번역으로 실렸다. 원작은 H.G.웰스의 《타임머신》이며 연재는 끝까지 가지 못하고 도중에 중단되었다.
1930년에는 <오색의 꼬리별>이 매일신보에 연재되었다. 1930년 10월 28일부터 1932년 3월 20일까지 15개월 가까이 연재된 번역작이지만 아직까지 원작이 어떤 작품인지는 연구된 바가 없다.
1933년 《신동아》 2월호에는 당시 동아일보 기자였던 김자혜가 쓴 <라듸움>이 실렸다. 이 단편은 엄밀한 의미에서 SF라기보다는 과학계몽 성격의 우화이지만, 한국의 SF 도입사와 관련해 당시의 과학 문화적 배경을 잘 드러낸 의미가 있다. <라듸움>은 본래 이 책에도 수록될 예정이었으나, 출판사에서 저자 자료를 조사하던 중 작가 김자혜가 <사랑 손님과 어머니>의 작가 주요섭과 부부로, 20세기 말엽까지 미국에 생존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또한 이 작품 외에도 많은 수필과 글을 남겼다는 기록을 보아 추후 독자들에게 소개하기로 하였다.
1940년에 《과학조선》 7월호에 연재가 시작된 <제3의 세계>는 ‘시몽루인(詩夢樓人)’이라는 작가 이름으로 실렸는데 그다음 호인 8, 9월 합본호에 연재 2회가 실린 뒤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번안으로 추정되지만, 원작이 어떤 작품인지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미국 작가 존 W. 캠벨의 1930년 단편 <Piracy Preferred>와 초반부 설정이 상당히 유사한 점은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를 전후하여 서양의 SF 문학이 어떤 경로와 양상을 거쳐 조선에 도입되었는지는 아직 통시적인 연구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분야이다.
작은 책자이지만, 이 책이 한국의 과학소설이 근대 문학 태동기에서부터 해방 이후까지, 다시 말해 이번에 50여 년 만에 다시 빛을 본 한국 최초의 SF 장편 《완전사회》(1965)에 이르기까지 어떤 질곡을 겪었는지, 또 그 와중에도 어떤 발전을 이루어냈는지 밝혀내는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
- 박상준, 한국SF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