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그 어느 때보다 ‘위로’를 필요로 하는 시대에
데뷔 28년차 소설가 함정임이 몸과 마음으로 터득해낸 진언(眞言)들
“쓴다,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작가정신의 ‘슬로북(slow book)’은 ‘마음의 속도로 읽는 책’으로, 자신의 속도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능동적인 삶의 방식이자 일상의 혁명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된 에세이 시리즈다. 함정임의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는 ‘슬로북’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는 함정임 작가가 부지런하고 꾸준하게 세상을 읽어온 목소리들을 풀어놓은 산문집이다. 함정임은 『이야기, 떨어지는 가면』, 『아주 사소한 중독』, 『내 남자의 책』 등 다수의 소설집과 장편소설을 발표하고, 『그리고 나는 베네치아로 갔다』, 『나를 미치게 하는 것들』, 『그림에게 나를 맡기다』, 『파티의 기술』, 『먹다, 사랑하다, 떠나다』와 같이 여행·미술·파티·요리 등 다방면을 아우르는 산문집을 펴냈다. 대학 강단에서 소설 창작과 이론을 가르치지만 언제나 자신의 본업은 ‘글쓰기’로 보는 함 작가에게 이번 산문집은 개인의 아픔으로부터 사회의 통증까지 모두 품어 안으려는 ‘괜찮냐’라는 위로의 안부인사이기에 더욱 각별하다.
이 책의 제목 『괜찮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어도』는 작가가 독자들에게 보내는 치유의 메시지다. ‘괜찮다’라는 말은, 괜찮지 않지만 가까스로 그것을 삭이고 있거나 그전에 괜찮지 않았음을 전제로 한다. 우리의 삶은 종종 그 말을 내뱉는 것조차 힘겨운 상태에 놓이고는 한다. 작가가 들려주는 세상의 모든 사연을 통해 독자들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그 마음을 보듬고 다독이며 자신과 세상을 사랑하는 길로 나아가게 하는 것. 작가는 섣부른 위로나 성급한 조언이 아니라 진정 어린 다독거림으로 억눌린 자아의 숨을 터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굴곡진 산맥과 황막한 사막과 울창한 밀림 따위로 이루어져 있다. 함정임 작가는 그 삶을 소설가라는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 살아왔기에 이해하고, 이제 그 삶을 살아가려는 청춘들에게 그리고 그 삶에 지쳐버린 군상들에게 자신의 걸음걸이로 함께 걷는 페이스메이커(Pace Maker)가 되어준다.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괜찮다는 말보다 더 가닿을 수 있는 응분의 위안을 건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산문집을 읽고 나면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세상이라 해도 “우리는 서로의 발소리를 들으며 한동안 말없이 걸었”노라고, 비로소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겨우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에게
안부를 묻고
삭히며 털어버리며 걷고
손을 내밀어 가만히 얹고
보듬어 안고,
잠에서 깨어나 잠들 때까지
그곳이 어디든,
별일이 없기를.
예술에서 사회, 개인의 삶에서 타인과의 관계까지 아우르는 통찰력,
웅숭깊은 눈동자로 삶의 속살에 숨은 상처를 쓰다듬다
소설은 자기 안에 억눌린 자아에 귀를 기울이고, 숨을 터주는 것부터 출발한다.
차마 보여주기 부끄럽지만, 드러내놓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진다.
마음이 자유로운 사람은 자신과 세상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소설 쓰기의 본질이 구원에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서」
함정임 작가는 글쓰기의 역할에 대해 위로의 숙명으로 설명한다. “쓰기는 자기 안에 웅크리고 있는 상처 받은 마음을 들여다보고 보듬어 안아주는” 일임을 강조한다. “자기 안에 억눌린 자아에게 귀를 기울이고, 숨을 터주는 것”, 그것이 바로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며, 슬픔과 아픔으로 저무는 우리 시대를 다시 회생시키는 숨결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가까이에서 멀리에서, 너 나 할 것 없이 상처 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자는 제언과 함께, 자신이 겪어온 모든 체험을 토로하며, 읽는 이들과 함께 다독일 수 있는 위로의 공동체를 만든다.
작가의 정처 ‘바닷가 서재’에 머무르며 그녀가 되살펴보았을 수많은 이야기들은, 지금 이 시대가 얼마나 큰 위로를 필요로 하는지 깨닫게 한다. 한국과 세계 각지를 떠돌며 머릿속으로 되뇌었던 사유의 문장들과 자신의 책상에 펼쳐놓은 노트에 끼적여둔 성찰의 메시지들은 따스한 어루만짐의 손길과도 같다. “괜찮다”고 함부로 덮어두려는 안일한 위로보다도 더 고요하고도 더 진실한 안부인사인 것이다.
가까이에서 멀리에서
‘괜찮다’는 말 대신 건네는
너, 나, 우리들의 이야기
불온과 불안과 불화를 숨김없이, 남김없이 드러낸 이야기들을 세상에 끄집어내는 것은 함정임 작가의 소설과 산문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 같은 경향은 함정임 작가의 산문에서 더더욱 두드러진다. 소설은 예술의 특성상 그 본질을 다소 숨길 수밖에 없지만, 산문은 그 본질을 있는 그대로 발화하려는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혀끝에 맴도는 말을 품고 살았다”고 서두를 떼는 작가의 말은, 바로 그 때문이다.
함정임 작가는 이번 산문집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에서 자신이 읽어간 사연들에게 “괜찮냐”고 묻지 못하면서, “괜찮냐고 물어보고 싶을 때가 많았다”고 고백한다. 그 까닭은, 그러한 물음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되었”기 때문임을 우리는 안다.
함 작가는 말한다. “사람마다 고유한 얼굴 생김새가 있고, 눈빛이 있고, 음색이 있고, 화법이 있듯,” 사람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품고 있다”고. 저마다 제각기 다른 사연을 품고 있기에, 그것을 함부로 자신과 같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조심스러운 사려 깊음. 함 작가는 그러한 마음으로 쓸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당신의 이야기를 청한다. 함 작가가 세계를 유랑하며 사유한 성찰의 흔적들을 빠짐없이, 허나 정연하게 내놓는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다. 함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들이 훑어온 세상의 모든 사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려 한다.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보듬어 안아주는 시간
“살아가면서 우리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을 경험한다. 실내에 있다가 정오의 햇빛 속으로 나아갈 때, 영화관 로비의 환한 조명 아래에서 휘장을 제치고 어둠 속으로 들어갈 때, 두 눈을 뜨고 앞을 보고 있지만, 앞을 전혀 분간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당황하지 않는다. 얼마 되지 않아 빛은 빛대로, 어둠은 어둠대로 눈 앞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밝혀지는 순간?
이 땅의 이웃이라고 할 수 있는 무수한 사람들에게 내 몫으로 주어진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일. 함정임 작가는 그것을 소설가의 소명으로 생각하며, 그것이 어렵고 까다로운 일이 아니라 다만 “괜찮냐고 묻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가만가만 고백한다. “살다 보면, 뜻밖의 선물이 주어지는 일이 있는데, 이때 선물이란 가까운 사람들에게 받는 책이나 꽃 같은 물질 형태가 아닌, 어떤 영혼과의 만남 형태가 되기도 한다”(?파리 옥탑방 철학자의 귀환을 환영함?)는 것을 작가는 아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함 작가는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먼 곳의 일”까지 헤아리기 위해, 삶의 아득하고 요원한 지평까지 찾아 여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 그녀는 자신의 가슴속에 묻어온 이야기들을 셰에라자드처럼 독자들에게 속삭여줄 준비가 되어 있다. 행복은 인간에게 본능의 영역이다. 때로는 벅차게 용솟음치며 희열을 느끼고, 또 때로는 절망적으로 고통을 겪으며, 우여곡절 끝에 도달한 세밑, 나 자신과 가족, 친구들을 위한 따뜻하고 다정한 위로의 말. 함정임 작가가 건네는 안부 인사를 한 자 한 자 천천히 매만지며, 환희와 슬픔 전부를 나누자. 세상을 읽어가는 기분을 함께 누리기 위해.
여기에 모인 글들은
추모의 마음으로
애도 일기를 쓰듯
파도치는 바닷가 서재에서
건져 올린 하찮지만
고유한 삶의 편린들이다.
혀끝에 맴돌던 말들을
여름의 안부처럼
건네본다.
-<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정신 에세이 시리즈
슬로북 (SLOW BOOK), 마음의 속도로 읽는 책
작가정신의 새로운 산문집 시리즈 ‘슬로북’은 백민석의 쿠바 여행 에세이 『아바나의 시민들』을 필두로 동시대와 호흡하는 한국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슬로북’은 속도지상주의 시대에 ‘느려질 수 있음’의 가능성을 누리면서, 자신만의 속도를 찾아내는 발상의 전환을 꾀할 것을 권한다. ‘빠름’과 ‘느림’ 모두를 자유자재로 구가할 수 있는 과정, 그것이 책을 통해 ‘느림’을 향유하는 능동적인 진화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슬로북’은 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