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당신이 살았던 날들 -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

당신이 살았던 날들 -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

저자
델핀 오르빌뢰르 지음, 김두리 옮김
출판사
북하우스
출판일
2022-01-27
등록일
2022-05-09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15MB
공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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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 프랑스 아마존 1위
★ 바벨리오상, 사부아르상 수상
★ 프랑스 독자들이 선택한 2021 올해의 책

“나는 수없이 많은 날들을
죽어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 곁에 있었다”
프랑스의 떠오르는 작가, 랍비 델핀 오르빌뢰르의
죽음에 관한 가장 정직하고, 지적이며, 유머러스한 사유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는 당연하듯 누려온 일상의 많은 것들을 잃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손실은 생명 그 자체였다. 팬데믹은 거대한 상실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죽음은 늘 우리 삶의 피할 수 없는 종착지로, 한 번도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다. 죽음에 대한 각종 은유와 설화는 삶의 정반대편에 있는 죽음의 성격을 확실히 해준다. 그렇다면 죽음은 그저 삶의 끝일 뿐일까? 죽은 이들이 떠난 빈자리는 슬픔으로밖에 채울 수 없는 것일까?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한 죽음이 불쑥 우리 집 문턱을 넘는 순간, 그 당혹스러움을 어떻게 애도하고 위로할 수 있을까?
「예루살렘 포스트The Jerusalem Post」 지가 선정한 2021년 영향력 있는 50인의 유대인 중 한 명인 델핀 오르빌뢰르는 프랑스의 세 번째 여자 랍비이다. 오르빌뢰르는 이스라엘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파리에서 기자로 활동한 후에, 뉴욕에서 랍비가 되는 과정을 밟았다. 랍비이자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손녀인 그녀는 우리 일상의 지각을 넘어선 경험들을 글에 녹여낸다. 홀로코스트와 테러, 국가적 슬픔으로 명명되곤 하는 죽음들, 혹은 그보다는 조금 개인적인, 어린 동생이나 둘도 없는 친구와의 갑작스러운 이별 곁에서, 저자는 죽음이 야기하는 두려움과 고통, 그리고 눈물을 대면한다. 그리고 좀처럼 둔감해질 수 없는 그 비극이 우리의 삶에 어떤 씨앗을 뿌리는지 함께 지켜보자고 말한다. 하나같이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죽음에 관한 열한 가지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죽음이 아닌, 여러 갈래로 나뉘어 면면히 이어지는 끝없는 이야기, 무한한 삶이 주는 감동과 위로를 만나게 된다.

“삶을 뜻하는 단어 ‘하임’은 복수형이다.
히브리어로 삶은 단수로 존재하지 않는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더 강렬하게 되살아나는 삶에 관한 우화들

오르빌뢰르는 한 인터뷰에서 여성이자 세속주의자이자 랍비인 자신의 복잡한 정체성을 “한 세계에 살면서 동시에 다른 세계에 사는 것,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세계 사이에 유대감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어쩌면 가장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죽음과 삶 사이에 다리를 놓는 작업을 시도한다. 마치 해진 옷을 깁는 일처럼, 떠난 이와 남은 이들 사이에 벌어진 거리를 오래된 유대의 언어와 고인의 생전 기억으로 메우고 있다.
원리주의에 희생당한 「샤를리 에브도」의 정신과 의사 엘자 카야, 그와 생전에 ‘죽음’과 ‘공포’를 주제로 서신을 교환했던 의사 마르크, 아우슈비츠에서 함께 살아남아 생의 마지막까지 특별한 우정을 나누었던 시몬 베유와 마르셀린 로리당, 자식에게조차 자신의 삶을 설명할 방법이 없어 끝내 침묵 속에 눈을 감은 홀로코스트 생존자 사라, 늘 같이 놀던 동생 이사악이 어디로 갔는지, 어디에서 그를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어린 형, 병마에 시달리며 예전과 같은 ‘나’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에 빠진 친구 아리안과 그 끝을 예감하면서도 친구 곁을 지킨 오르빌뢰르 본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마치 유대인들이 무덤 위에 올려놓는 조약돌처럼, 우리 안에 작지만 분명한 흔적을 남긴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 죽은 이들이 변치 않는 자리를 차지할 것이며, 그 자리의 의미를 끊임없이 기억하고, 해석하고, 전달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책무라는 의식이다. 오르빌뢰르는 고인의 영혼을 유대의 기도문인 카디시로 위로하고, 애도자들의 슬픔과 한탄 섞인 고백을 추모의 말로 번역하는 가운데 이 책무를 성실하게 수행한다. 이렇게 차곡차곡 포개어진 이야기들이 죽음보다 더 긴 ‘삶’이라는 실에 매달려 깊은 유대감 속에 전달되고, 저마다의 상실의 기억이 사려 깊은 손길의 위로를 받는다.

“여기에 없는 자들을 기억하라”
떠난 이들이 남기고 간 매듭으로,
남은 이들은 새로운 태피스트리를 짠다.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 갈 이야기이다.

히브리어로 유령은 ‘루아흐 레파임rouaH’ refaim’, 문자 그대로 ‘늘어진 영혼’을 의미한다. 유대 전통에서는 죽은 자들의 채비를 매듭짓기 위해 마지막으로 죽은 이가 입은 수의의 가장자리를 꿰맨다. 헐거운 수의를 꿰맴으로써 올 풀린 영혼을 수선하는 것이다. 반면 바늘땀이 부족해 세상에 붙들린 유령은 풀려버린 올 때문에, 자신의 해진 이야기의 흔적 때문에 되돌아온다. 오르빌뢰르는 그렇게 돌아온 유령의 목소리를 삶을 위한 언어로 되돌려준다. 고인의 삶에서 얽힌 부분은 풀고, 흩어진 조각들은 그러모아 하나의 피륙을 만든다. 종교의 언어와 인간의 역사, 그리고 개인의 경험에서 비롯된 풍부한 인용과 고백, 은유가 흘러넘치는 가운데, 일생 교차하다 엉킨 실들이 새로운 태피스트리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한 사람의 죽음은 한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것이다. 그 비극은 늘 생경하여, 우리는 그것을 표현할 말을 찾는 데 늘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실패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르빌뢰르는 더듬거리며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을 위한 노랫말을 찾는다. 그리하여 복수와 앙갚음의 신이라는 형상에 매달려 저지른 테러 앞에서 “당신이 우리에게 율법을 주었으니 그 율법을 해석할 책임도 우리에게 있다”고 신에게 당당하게 주장했던 현자를 떠올리고, 일생 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해 앞장서온 이의 장례식에서 여자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할 인물로 신에게 보낸 ‘스콧젤’의 설화를 들려준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질투심에 오빠의 장난감 조각을 집어삼킨 어린 오르빌뢰르가 그로 인해 자신이 곧 죽을 거라는 두려움에 휩싸여 흐느끼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다가와 어린 손녀를 다독인다. 할아버지는 그녀 앞에서 남은 장난감 조각을 크게 베어 물고, 삼킨다. 그리고 그녀에게 잘 자라는 인사는 건네고는 방을 나간다. 설령 죽음을 피할 수는 없더라도, 그 죽음 앞에 홀로 남겨지지 않을 거라는 위안은 우리를 편히 잠들게 한다. 그리고 그 죽음 앞에 누구도 홀로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은 우리에게 우리의 삶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질 풍요로운 이야기를 남긴다. 그렇게 얽힌 매듭은 풀리고, 헐거운 천 조각은 단단히 기워진다.

“죽음에 대해 내릴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정의는
그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무력함 앞에서도 눈을 돌리지 않는 용기,
죽음에 관한 역설과 아이러니가 빚어낸 깊은 위로

오르빌뢰르의 이야기는 자신이 태어나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난 삼촌의 무덤 앞에서 끝을 맺는다. 누군가에 의해 한 차례 파헤쳐진 그 무덤 앞에서 오르빌뢰르는 죽은 이들의 입까지 틀어막으려는 혐오와 증오의 감정을 목격하지만, 동시에 그 죽음의 장소에서조차도 지속되는 삶의 증거를 발견한다. 그리고 “세상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는 것은 강하고 튼튼해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약하고 일시적이며 빈틈이 있는 것들”, 말하자면 “지나간 존재의 입김” 같은 것들이라고 말한다. 히브리어로 묘지가 ‘베트 아하임Beit haH’ayim’, 즉 ‘살아 있는 자들의 집’으로 불리는 것처럼, 죽음은 그 안에 이처럼 삶을 위한 역설과 아이러니를 잔뜩 품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죽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죽음 앞에서 “레하임!(삶을 위하여!)”을 외치며 생生을 찬미할 수 있다고, 그녀는 말하고 있다.
오르빌뢰르는 죽음을 “정확히 발화의 끝에 도장을 찍는” 것에 비유한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상실로 인해, 말은 그 의미 작용을 멈추고, 그것을 묘사하려고 하면 늘 오용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모두 발화의 끝에서부터 시작되고, 따라서 무력감을 안고 간다. 그렇지만 우리는 확신의 언어가 아닌 물음표를 매달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그 어떤 강한 믿음 안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깊은 안식과 위로를 발견한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미도르 레도르(대대손손)’ 이어질 것이며, 그로 인해 우리의 이야기 역시 우리의 뒤에서도 살아남을 것이라는 위안이다. 필멸하는 운명은 어느 순간 우리 삶에 커다란 구멍을 뚫는다. 오르빌뢰르는 두렵더라도 그 구멍에서 눈을 돌리지 말자고, 서툴더라도 그것을 애써 메워보자고, 그렇게 마침내 죽음과 함께 삶을 노래하자고, 간곡하고 다정한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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