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덕후의 덕질로 철학하기 - 우리는 누구나 무언가의 덕후다
들숨에 덕질, 날숨에 철학
‘덕질 반, 철학 반’ 본격 덕질 고찰 에세이
덕질은 어떻게 삶을 변화시키는가?
한때 ‘덕질’이란 말은 부정적으로 쓰였다. ‘팬질’, ‘꼰대질’, ‘갑질’, ‘사장질’ 등에서 보듯 ‘-질’이라는 말은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 행위나 일을 낮잡는 의미를 더하기 때문이다. ‘덕후’ 또한 마찬가지다. 오타쿠(御宅)라는 일본어에서 비롯된 덕후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사회적 관계를 거부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었기에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했다.
하지만 최근 책, 영화, 커피, 와인, 문구, 스포츠, 아이돌 등등 각종 덕질 문화와 행위가 삶의 지표가 되고 널리 퍼져나가면서 덕질과 덕후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나 <미스터 트롯> 프로그램이 가요계와 덕질계에 새로운 문화적 지형을 만들어내면서 10~20대 젊은이들이 트로트에 빠지고, 중년이나 노년에게도 팬덤 문화가 생겼으며, 자신이 모시는 덕주 덕분에 잃어버렸던 삶의 활력을 찾게 되었다는 간증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덕통사고를 당하기 전, 천둥 작가는 ‘생산적인 일만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여기는 50대 평범한 중년 여성이었다. 사회적 편견이 심했기에 입덕 부정기가 길었다는 작가는 결국 왜 덕질을 하는지, 덕질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진지하고 무겁지만은 않다. SNS를 시작하고 덕친과 소통하는 재미를 느낄 무렵, 덕주(천둥 작가의 덕주는 비밀이다. 책을 통해 확인해보시길)가 인스타 라이브를 했을 때, 하필 화장실에 앉아 있었다며 이걸 켜면 상대방이 나를 보게 되는 건 아닌지 안절부절했다는 에피소드는 그 마음이 짐작되어 웃음 짓게 한다. 덕주의 사인을 받기 위해 떨었던 일련의 주접(천둥 작가의 표현이다)은 가히 포복절도할 만하다. 위트 있는 글, 철학적인 사유. 이 책의 매력이다.
철학이란 우리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아는 것,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세상에 말하는 것이다. 잠깐 반짝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단단하게, 흔들리지 않고 오래 가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철학적으로 사유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천둥 작가의 ‘덕질 고찰’은 덕질이 나이나 경험에 상관없이 얼마나 삶에 힘을 주고 스스로를 단단하게 하는지를 깨닫게 한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나를 찾아가는 여정
삶의 이유가 된다면 그걸 하는 거지!
누구에게나 삶을 흔들어놓는 순간이 있다. 이 순간들은 삶을 어떻게 흔들어놓을지 모른다. 그저 스쳐갈 수도 있지만 삶을 색다른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최애가 쌓여가고 내 마음에 안긴 덕주를 응원하는 마음이 점점 부풀어 삶의 미래까지 바뀐 덕후들이 많다. 이른바 덕업일치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천둥 작가 또한 덕주를 그리고 싶은 덕심으로 매일 그림 그리기를 3년째, 매일 글쓰기를 1년째 하고 있다. 자신의 보폭으로 자유롭게 하다 보니 학부모회장으로 활동했던 경험을 모아 책 한 권을 쓰게 되었고, 그림책 한 권을 독립출판하기도 했다.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내면을 돌보며 이 책을 쓰게 되었다.
결국 작가는 말한다. 덕질은 도구였을 뿐이라고. 나를 향한 여정에 덕질이 좋은 도구가 된다면 그걸 하는 거지 다른 이유가 있겠냐고. 그러니까 이 책은 딱히 덕질이라는 이름으로 덕후라는 특정한 지칭으로 설명할 필요 없는 일반적인 삶의 방식일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