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코트를 입은 남자
“프랑스 역사상 가장 정열적이고 자유로웠던 영혼,
줄리언 반스가 발굴해낸 ‘숨겨진 보물’ 사뮈엘 포치”
“종횡무진 이야기들을 엮어나가는데 솜씨가 정말 대단하다. 보석 같은 책!”
_역자 정영목
★★★★★ 맨부커상 수상 줄리언 반스의 최신작
★★★★★ 독일 아마존 1위
★★★★★ 2019 더프 쿠퍼상 최종후보작
“나는 포치만큼 유혹적인 남자를 만난 적이 없다.
내가 본 그는 언제나 미소를 짓고, 온화하고,
비길 데 없는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였다.”
퇴폐적이고 광적이고 자기도취적이었던 벨 에포크 시대
어디에도 속박당하지 않고 늘 역사의 ‘옳은 편’에 섰던 보통의 영웅, 사뮈엘 포치
“정교하게 갈고닦은 전기적 직관력과 소설가의 감성이 만들어낸 세련되고 매혹적인 작품!”(커커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영국 문학의 제왕 줄리언 반스의 최신작 『빨간 코트를 입은 남자』가 다산책방에서 출간되었다. 2015년 런던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 전시된 ‘빨간 코트’를 입고 서 있는 사뮈엘 포치의 초상화를 처음 본 반스는, 지금껏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던 19세기 외과의사 사뮈엘 포치에게 깊이 매료되어 이 책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뮈엘 포치는 전 세기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시절로 일컬어지는 ‘벨 에포크’ 시대에 살았던 인물로, 1901년 프랑스 최초의 산부인과 전문의이자, 전 세계적으로 ‘표준 교과서’로 인정받은 부인과학 논문을 쓴 저명한 의사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방대한 사료를 연구한 끝에 줄리언 반스는 그가 놀랍게도 당대 내로라하는 명성 높은 예술가들 모두와 연결되어 있던 핵심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사뮈엘 포치는 사라 베르나르가 ‘의사 신’이라고 부르는 유능한 의사이자 애인이었고, 마르셀 프루스트의 아버지와 형제의 동료 의사였으며, 괴짜 소설가로 통하는 장 로랭의 평생지기 친구였다. 그뿐 아니라 그는 당시 프랑스의 중요한 역사적 현장에 의사, 상원 의원, 운동가로서 늘 함께했다.
작가 줄리언 반스는 뜻밖에도, 사전트의 그림에 기품 있고 당당한 모습으로 묘사된 부인과 의사이자 사교계의 명사 사뮈엘 포치를 통하여 이 시절로 접근해 들어간다. 포치가 펼친 그물은 넓기도 하여, 많은 것이 무너지고 많은 것이 잉태되던 이 복잡한 시기의 전모가 어느새 그의 맥락으로 자리를 잡는다. 반스는 소설가적 통찰과 재료를 다루는 섬세한 손길과 그만의 산문으로 독특한 전기를 기록하여, 벨 에포크가 사랑한 아름다움을 짙은 그림자와 함께 우리 눈앞에 펼쳐놓는다. ?정영목
『빨간 코트를 입은 남자』는 출간 즉시 매해 영국 최고의 논픽션에 수여하는 더프 쿠퍼상에 최종 후보작으로 선정되고 독일 아마존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반스의 건재함을 여실히 증명했다. 반스는 벨 에포크 시대를 관통한 매혹적인 한 남자 사뮈엘 포치, 그리고 그를 둘러싼 당대 최고 예술가들의 사랑과 욕망, 질투의 세계를 특유의 재치와 지적인 통찰, 풍부한 디테일로 치밀하고 촘촘하게 펼쳐낸다.
마르셀 프루스트, 에드몽 드 공쿠르, 헨리 제임스, 오스카 와일드, 사라 베르나르…
그리고 이들 모두와 연결되어 있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
이야기는 1885년 여름, “이상한 3인조”가 영국 런던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프랑스에서 유명한 귀족 가문인 에드몽 왕자와 댄디, 유행의 결정자였던 몽테스키우 백작, 그리고 평민 사뮈엘 포치. 동성애자로 유명한 왕자와 백작, 유명한 사교계 미남인 외과 의사. 이 기묘한 조합의 3인조가 함께 런던에 온 이유는, 몽테스키우의 표현에 따르면 며칠 동안 “지적이고 장식적인 쇼핑”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 시대 유명한 왕자와 거만한 백작이 어떻게 이탈리아 출신의 부르주아지 평민과 어울리게 되었을까?
나는 포치만큼 유혹적인 남자를 만난 적이 없다. 내가 본 그는 언제나 미소를 짓고, 온화하고, 비길 데 없는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였다. -몽테스키우 회고록 중에서
포치는 이처럼 편안하고 사적인 매력을 지닌 사람임과 동시에 선진적인 병원 관리와 수술로 수많은 생명을 구한 뛰어난 외과 의사였고, 병원 개원식에 당시 대통령이 참석할 정도로 사회적 명망을 얻은 인사였다. 또 브로카 병원의 취임사, 즉 “같은 인간의 생사를 좌우하는 힘을 가진 우리 각자에게는 양심의 문제가 있습니다?양심은 의사, 특히 칼을 휘두르는 사람의 첫 번째 특징이 되어야 합니다”에서 보듯 부와 명예를 좇는 속물적 인간이 아닌, 환자의 생명을 고귀하게 여길 줄 아는 진정한 휴머니스트이기도 했다.
포치는 공인이었다. 상원 의원, 마을 시장, 강력한 정신과 많은 사람들에게 맞서는 강력한 견해를 가진 운동가였다. 그는 교회가 국가와 강하게 싸우던 시기에 과학적 무신론자였고, 반으로 쫙 갈라진 나라에서 공개적인 드레퓌스파였으며,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업계에서 혁신적인 인물이었고, 모든 남편이 아내의 외도에 관대하지는 않은 사회에서 돈 후안 같은 존재였다. -본문 중에서
한편 반스는 포치뿐만 아니라 이 책에 등장하는 수십 명 개인들의 건널목을 요모조모 되짚는다. 이 책에서는 조연이지만 사뮈엘 포치보다 유명인사인 위스망스, 마르셀 프루스트, 에드몽 드 공쿠르, 오스카 와일드, 쿠르베 등의 아주 사적이고 입체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이 또 다른 재미를 안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사실인지에 관해서는 이 책에 가장 많이 나오는 문장, 즉 “우리는 알 수 없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이 책에 소설적 재미와 긴장을 더해주는 요소다.
“우리는 알 수 없다.” 아껴서 사용하면, 이 말은 전기 작가의 언어에서 가장 강력한 표현 가운데 하나가 된다. 이것은 우리가 읽고 있는 점잖은 한?삶의?연구가 그 모든 세부와 길이와 주석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사실적 확실성과 자신만만한 가설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공적 삶의 공적 판본이자 하나의 사적 삶의 부분적 판본일 수밖에 없음을 일깨워준다. 전기는 줄로 묶어놓은 빈 구멍들의 집합이다. -본문 중에서
시대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을 온전히 지켜낸 한 인간,
그가 오늘날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무엇인가
당시 파리와 런던, 즉 프랑스와 영국은 있는 그대로 상대를 인정하는 대신 어느 나라 출신이라는 이유로 편견을 지니고 바라보았다. 영국은 프랑스를 ‘추잡스러운 것의 원천’으로, 프랑스는 영국을 ‘더럽고 영혼 없는 마몬’으로 여겼던 대책 없는 편견의 시기였던 것이다. 일례로 실은 아일랜드 사람이었으나 프랑스인이 잉글랜드 사람이라고 여겼던 오스카 와일드를 두고 화가 드가는 “그는 마치 어떤 지방 극장에서 바이런 경을 연기하듯 행동한다”라고 깎아내렸고, 공쿠르상의 주인공인 소설가 에드몽 드 공쿠르는 “허풍잡이 협잡꾼”이라고 힐난했다. 오스카 와일드는 작가 장 로랭을 “허식에 찬 사람”이라고 비하했다.
반스는 가디언과의 인터뷰를 통해 “내가 처음 그를 봤을 때 나는 오늘날 우리와 그가 깊은 관련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사하면 할수록 닮아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극도의 민족주의와 자연주의, 반유대주의, 외국인 혐오. 우리도 지금 그때 사뮈엘 포치가 그랬듯 매우 끔찍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정치적 불안과 스캔들로 가득 찬 신경질적이고 히스테리적인 불안의 시대, 그리고 이 시기에 살았던 합리적이고, 과학적이고, 진보적이며 국제적이고 호기심 많았던 선구자적 포치가 시대상과 맞물려 더욱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사뮈엘 포치는 이들과는 달리 국경에도, 편견에도 갇히지 않은 자유사상가였다. 이 같은 가치관은 포치가 한 다음 말에서 잘 드러난다. “쇼비니즘은 무지의 한 형태다.” 취향을 따라 고립되기를 즐겨했던 당대 예술가들 사이에서 그는 자기 고립에서 벗어나 인간을, 세계를 이해하려 했던 시대를 앞서간 진정한 진보주의자였다. 실제로 그는 1876년 영국에 찾아가 조지프 리스터에게 소독법을 배워 프랑스의 많은 환자들을 살려냈으며, 프랑스가 ‘물질의 연방 공화국’이라며 경계했던 미국과도 교류를 활발히 했다.
어디에도 속박당하지 않았던, 그저 비길 데 없는 자기 자신으로 살았던 평범한 영웅 사뮈엘 포치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제한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포치가 살았던 시대도 당시 문학 작품과 미술 작품에서 보이는 것처럼 자유롭고 아름답기만 한 시대가 아니었다. 철저한 편견과 배제, 계급이 공고한 시대였다. 그럼에도 포치 자신은 그것에 얽매이지 않았다. ‘옮은 것’을 추구하고, ‘장식적인 쇼핑’만을 위해 다른 나라로 떠나고, 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나며 자기가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최대로 추구한 인물이었다. “그는 고맙게도 결함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일종의 영웅으로 내세우고 싶다.”(작가의 말) 우리와 크게 다를 것 없었지만 소신대로 자기 소임을 다 하고 간 한 사내의 이야기가, 자기 한계를 뛰어넘는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오늘날 우리에게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