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차별주의자 - 보통 사람들의 욕망에 숨어든 차별적 시선
신념, 상식, 취향이라고 믿었던 것이 차별이라면?
평범한 일상에서 발견한 차별과 멸시의 순간들
극우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는 상식도 개념도 없는 멍청이일까? 난민과 이민자는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안전을 위협하는 잠재적 범죄자일까? 매일 출퇴근하며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는 직장인은 비루한 월급의 노예인가? 우리 생각은 옳은데 저 소수의 ‘멍충이’들 때문에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사회는 점점 흉악해지고, 안전은 위협받고,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마저 놓친 건 아닐까?
<내 안의 차별주의자>는 이런 생각을 단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나와 사회를 성찰하게 하는 책이다. 유럽에서 주목받는 젊은 사회학자의 목소리를 뜨겁게 담아낸 이 책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내재된 독선과 멸시의 시선을 들여다보고, 나와 다르게 살고 있는 이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재고하게 하는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유기농 음식을 먹고, 유기견을 입양하는 것도 차별적 행동이라면 인정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을 읽어보면 우리가 가진 신념, 철학, 행동이 사회적 구조와 맞물려 어떻게 차별로 변질되는지 적나라하게 목도할 수 있다.
대학에서 사회 불평등을 꾸준히 연구하고 그중에서도 성평등과 소수자의 삶에 귀 기울여온 저자는 우리가 먹고 일하고 즐기는 일상 곳곳에서 ‘나’와 ‘타인’을 어떻게 구별하는지, 다름을 어떻게 조롱하고 무시하는지, 이런 경계 짓기와 멸시의 시선들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차별을 공고히 하는지 다양한 사례와 사회학적 이론, 위트 넘치는 문체로 담담하게 풀어냈다.
남보다 우월해지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이 낳은 차별과 소외의 장면들
소속, 직업, 성별, 빈부차, 취향, 정치성향 등 8가지 주제로 살펴본 독선과 배제의 작동원리
‘사회악’ ‘기생충’ ‘성차별주의자’ ‘수구꼴통’ ‘페미니스트’ ‘정규직, 비정규직’ ‘갑질’ ‘꼰대’ ‘진보, 보수’ ‘다문화가정’ 등 우리는 전례 없이 라벨링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라벨링은 나와 너, 우리와 저들을 가장 손쉽게 경계 짓는 배제와 멸시의 일종으로 나와 다른 사람에게 꼬리표를 붙임으로써 선을 긋고 혐오의 시선을 보내거나 조용히 경멸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저자는 나와 다른 그룹, 나와 다른 생각과 입장, 성별, 연령, 계층, 종교, 국적에 따라 끊임없이 경계를 긋고 니 편, 내 편을 나누려고 하는 심리, 우리 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라벨링의 모순과 고정관념의 폐해, 혐오와 멸시의 메커니즘을 다양한 시선, 층위를 통해 낱낱이 해부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나는 좀 달라’라는 생각 속에 숨겨진 조롱과 차별의 눈을 예리하게 포착해냈다. “나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냐” “나는 저런 꼰대처럼은 안 살 거야”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 “나는 환경을 생각해 유기농만 먹어” 등 나를 드러내는 평범한 말 속에는 타인과 끊임없이 달라 보이고 싶고,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욕망이 숨겨져 있으며 이 우월감이 새로운 방식의 차별을 생산, 확대하고 있다고 경계한다. SNS에 올리는 댓글 하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 하나에서도 무엇을 먹고 쓰는가, 누구와 친해지고 싶은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가, 어떤 가치를 공유하는가 등이 적나라하게 보여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자신의 소속, 신분과 취향을 드러냄으로써 내 편과 니 편을 공고히 하고 다른 편을 비하하거나 은근히 외면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로써 우리가 ‘다름’과 ‘존중’ ‘대화’가 들어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소비 행동은 신분의 상징이 되고, 직업은 정체성이 되며, 정치적 다름은 적개심이 된 시대, 이 책은 내 안의 차별적 시선과 사고의 모순을 좇아가며 평등의 의미, 소통의 방식, 공생의 의미를 되돌아본다.
무엇으로 1류와 3류를 규정하는가
다른 생각을 갖고,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 책은 소속 범주로서의 ‘우리’가 직업, 소속, 성별, 빈부 격차, 소비취향, 관심사, 범죄, 정치 영역에서 어떤 구조를 띠는지, 또 그 안에서 ‘남들’을 바라보는 독선적 시선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살핀다. 총 8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 ‘일’에서는 젊은이들에게 “좋아하는 일을 해, 그럼 성공할 수 있어”라는 말이 어떻게 폭력이 되는지, 또 ‘자아실현’이라는 이름으로 열정을 강요하는 사회 이면에 복지나 임금이 어떻게 소외되는지 살핀다. 또 육체노동자와 정신노동자가 서로를 어떻게 폄하하는지, 이런 분열은 어디서 왔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본다. 2부 ‘성’에서는 “올해의 여성상 감이야” ‘워킹맘’ 등의 일상적 표현에 담긴 여성 차별적 시선과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남성 역할을 살펴보고 남녀 불평등의 구조와 고정관념, 여전히 지속되는 다양한 범주의 남녀 불평등을 분석한다. 3부 ‘이주’에서는 이민자 담론이 어떻게 불평등을 부추기는지, 소속과 신분에 따른 적대감의 정체를 파악한다. 4부 ‘빈부 격차’에서는 빈부 격차로 생기는 취업과 실업의 악순환과 그 사이에서 실업자가 어떻게 사회 기생충이 되는지 알아보고, 기업가 마인드가 어떻게 노동 시장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지 살핀다. 5부 ‘범죄’에서는 좀도둑만 잡고 큰 도둑은 놓아주는 사법 불평등,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폭력 이면의 부조리를 분석한다. 6부 ‘소비’에서는 상품을 이용한 다양한 신분 과시 형태와 윤리적 소비가 신분의식이 되어버린 현실을 살핀다. 7부 ‘관심’에서는 ‘팔로워’와 ‘좋아요’에 갇힌 디지털 자아의 문제점과 이로써 생겨나는 다양한 현상을 분석한다. 8부 ‘정치’에서는 정치적 입장이 다르면 무조건 적으로 돌리는 사회적 병폐와 서로를 깎아내리며 병리화하는 유권자들의 태도를 분석한다.
이해와 배려, 상생의 길을 찾는 책
이 책은 평범하고 당연하게 여겼던 우리의 차별적 시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역으로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모두가 불평등을 조장하거나 방조하는 일원이 될 수도 있음도 상기시켜준다. 우리가 지금까지 ‘저들’이라고 불렀던 사람이 어느날 곧 내가 될 수 있음을 떠올리게 하는 이 책은 우리 사회가 앞으로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묻고 있다. 내가 누리는 평화와 안위가 ‘저들’이라고 손가락질했던 사람들의 희생을 딛고 서 있음을 깨닫게 하고, 남에게 향하는 엄격한 시선을 자신에게 돌려보는 기회를 제공하며, 배제와 혐오가 아닌 존중과 공생의 길로 나아가는 단초를 제공한다. 청소년은 물론 사회 지식인과 교양 계급, 성숙한 시민으로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