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근린생활자

근린생활자

저자
배지영 지음
출판사
한겨레출판
출판일
2019-07-28
등록일
2019-12-24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47MB
공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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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딱 내 취향의 소설! 무엇보다 너무 재밌다!!”
-김동식(작가)

지하생활자 3년, 옥탑생활자 2년…
제대로 된 집에서 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실 이것은 ‘직업’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있고 전문성도 가지고 있음에도 야박한 대가와 고된 환경을 견뎌야 하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혹은 조금 더 노력하지 않은 자신을 탓하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먹고살아야 하니까, 그래야 해서가 아니라 그래야 하는 줄 알고 살아왔던 이들입니다. 그렇게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_‘작가 인터뷰’ 중에서

엘리베이터 수리 기사, 태극기 부대 할아버지, 하청업체 노동자, 청소기 판촉사원…
동시대를 살아가는 비정규 인생들의 이야기


“그의 소설은 ‘비정규 인생’의 다채로운 경로와 세목들을 분연히 펼쳐놓고는 되묻는다. 이 폭력적 가난의 생태학, 그 압도적인 구체성을 당신이 정말 ‘향유’할 수 있느냐고.” _오혜진 문학평론가

규정에 맞는 정상적인 상태. 정규의 사전적 의미다. 그렇다면 비정규란 무엇일까? 이는 ‘정규가 아님’을 뜻한다. 배지영 소설집 《근린생활자》는 우리 사회에서 정규가 아닌 모습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근린생활자’는 근린생활시설에 사는 이를 일컫는 말로, 평범한 집에 거주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구청의 단속을 피해 쥐 죽은 듯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언제 자신의 집에서 나가야 할지 모르는 이들은 비정규직의 삶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안고 근린생활시설을 매매한 청년 상우(<근린생활자>), 북한 부동산에 투자한 태극기 부대 할아버지 순병(<소원은 통일>), 산림청 하청업체에서 폐기물이 저장된 드럼을 묻고 관리하는 일을 하는 그(<그것>), 수력발전소의 도수관 벽면에 붙은 삿갓조개를 긁어내는 노동자(<삿갓조개>), 마트 행사장에서 물건을 훔치는 나와 등산로에서 영감들에게 몸을 파는 미자 언니(<사마리아 여인들>), 동네 마트에서 중소기업 청소기를 파는 외판원 길 씨까지(<청소기의 혁명>). 수록된 여섯 작품은 현재를 살아가는 수많은 비정규 인생들에 대한 이야기다. 각 작품의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울컥하기도 하고 한숨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는 우리가 지금 겪는 현실과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들은 작가가 실제로 겪었던 일에서 시작되기도 하고, 신문과 TV 등의 매체를 통해 전해진 편파적 보도에서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먹고살기 위해 노력해봐도 절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 전문적이고 고된 일을 하고 있음에도 야박한 대가와 어처구니없는 노동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노동자들. 소설집 《근린생활자》는 그런 이들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울음 같은 웃음도 달음박질도 그리고 눈물도 멈출 수가 없었’던 비정규 인생을 위한 이야기다.

꿈마저 잃어버린 채 표류하는 이들의 이야기
<근린생활자>, <청소기의 혁명>


<근린생활자>와 <청소기의 혁명>은 꿈꿨던 삶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는 청년들의 이야기다. 먼저, 표제작 <근린생활자>는 엘리베이터 수리 기사 상욱이 싼 전세를 찾다 근린생활시설를 매매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근린생활시설은 상가로 준공 허가를 받은 뒤 주거용으로 바꾼 것으로, 구청의 단속을 피해야 하는 집이다. 상욱은 그간 살았던 곳과는 비교할 수 없는 쾌적함에 집을 매매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다. 근린생활자로서 지켜야 하는 규칙들이 줄지어 나타났고 함께 살기로 한 병수는 부실 공사를 들먹이며 매일매일 상욱의 마음을 긁어댔다. 다른 입주민의 눈치를 살피며 병수까지 챙겨야 하는 상욱. 그는 근린생활자로서의 규칙을 지키며 살아간다. 반드시 인터폰으로 확인한 후 문을 열었고, 발코니에서는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신고로 언제 이 집에서 나가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상욱은 과연 근린생활자로서 무사히 살아갈 수 있을까.

“아이는 결국 바다에서 나오지 못했다. (…) 고작 먼지 통 속에 섞인 먼지들, 머리카락 뭉치, 하얗고 작은 손톱조각뿐인 것을 전할 필요가 없었으면 하고 바라고 또 바랐다.” _본문 중에서

<청소기의 혁명>은 작가가 가장 조심스럽고 아프게 쓴 소설이다. 이 작품은 중소기업의 연구원으로 일하며 바람개비 청소기를 개발해 홈쇼핑 완판 신화를 이루었지만 지금은 마트에 나와 자신이 개발한 청소기를 파는 판촉사원 길 씨의 이야기다.
소설은 4·16 세월호 사건을 다룬다. 희생된 아이들과는 전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어쩌면 그냥 한번 마트에서 지나쳤을 법한 인물인 길 씨의 시선으로 떠나간 아이들과 남은 이들의 마음을 담고 있다. 청소기를 작동시키면 투명한 아크릴 먼지 통 안에서 마치 살아 있는 나비처럼 노란빛을 내며 돌아가던 바람개비. 길 씨가 개발한 청소기는 실용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기능이나 성능만 강조되는 사회에서 철저히 외면당한다.
아이가 반품한 청소기의 먼지 통에 들어 있는 작은 먼지들을 버리지 않았던 길 씨. 그는 이 먼지가 아이의 마지막 흔적이 아니길 바라지만, 그 작은 꿈마저 무너지자 지금까지 자신이 지켜온 삶의 활기를 더 이상 찾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을로 태어난 사람들의 목소리
<그것>, <삿갓조개>


소설 <그것>과 <삿갓조개>은 노동의 이면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의 주인공 그는 폐기물이 담긴 저장드럼을 묻고, 안전하게 유지되도록 관리하는 일을 한다. 그는 자신이 묻고 관리하지만 그 안에 든 것이 정확히 어떤 폐기물인지 알지 못한다. 그저 원칙만 제대로 지키면 된다는 윗선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 이 일이 위험하다며 그만두는 후배를 보며, 그는 세상 모든 일은 어느 정도 목숨을 내놓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칙만 제대로 지키면 전혀 위험한 일은 아니었다. 세상 어떤 일이든 어느 정도 목숨을 내놓고 해야 했다. 그가 이 일을 하기 전에 거쳤던 일들, 그러니까 지하철 스크린도어 작업이나 하수관 청소도 그랬다.” _본문 중에서

동생 미애네 부부가 살 곳을 직접 알아봤던 것은 그였다. 그 이유는 저장드럼이 없는 곳을 선별하기 위해서였는데, 그것의 안정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는 그였지만 그것이 묻힌 땅 주변을 일구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동생 미애가 암에 걸려 죽었을 때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일을, 그리고 그것의 존재를 의심한다. 큰 죄를 덮기 위해 작은 죄를 곁에 두는 이들. 그들이 끝까지 숨겨야만 하는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삿갓조개를 긁어내는 일을 했다. 그의 손엔 가위 같은 도구가 들려 있었다. 가위는 아니었다. 두 개의 날이 교차되는 형태였지만 가위와 달리 바깥쪽 날도 날카롭게 서 있었다. (…) 이것은 조개더미를 깨트릴 때 유용했다. 익숙하게 깨트리고 긁어내고 잘라냈다. _본문 중에서

소설 <삿갓조개>는 시급 900원 인상을 위한 수력발전소 도수관 청소 노동자의 파업을 소재로 하고 있다. 도수관 안에서 기압 차이를 견디며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10시간을 꼬박 삿갓조개를 긁어내도 그의 손에 200만 원이 채 떨어지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온갖 내역으로 돈이 조금씩 깎인 채 급여가 나왔다. “100만 원만 준대도 일 시켜달라는 사람은 많아”라는 작업반장의 말은 그들의 생존을 건드렸고, 도수관 노동자들은 먹고살기 위해 도수관 안으로 들어가 파업을 시작한다.
소설 속 파업을 저지하는 진압대의 비인간적인 모습과 언론의 편파적 보도 등은 쌍용차 파업 진압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2010년에 집필된 이 작품은 그 당시의 노동 현장과 사회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담고 있는데, 이는 집필로부터 9년이 지난 지금에도 유의미하게 읽힌다. 하루 이틀 정도만 견디면 시급 900원을 올릴 수 있을 거란 노동자들의 희망이 애절하고 슬프게 들리는 건, 어쩌면 우리가 소설보다 더한 이야기를 현실에서 읽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태극기 부대 할아버지, 박카스 할머니가 된 그들의 사정
<소원은 통일>, <사마리아 여인들>


그러고 보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었다. 그것을 위해 어떤 방법을 취하든, 어느 편에 붙든 비난받을 일은 아니었다. _본문 중에서

<소원은 통일>은 북한 부동산에 투자를 한 태극기 부대 할아버지 순병 씨의 이야기다. 퇴직 이후 기원을 들락거리다 태극기 부대 집회에 참여하게 된 그는 집회에 나온 노인들의 자신감 넘치는 행동들을 보며 뜨거운 무언가를 느낀다. 그랬던 순병 씨가 변하기 시작한 건 북한 부동산에 투자를 하기 시작하면서였다. 투자자들이 만든 단톡방이나 밴드에서 공유하는 정보는 그간 순병 씨가 봐왔던 종편 뉴스와는 전혀 달랐다. 처음엔 다소 동의하기 힘든 내용도 있었지만 순병 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생각마저 변해갔다. 어떤 방법을 쓰든 통일은 속히 되어야 하는 것이었고, 어떤 교류든 끈을 놓쳐선 안 됐다. 그래야 순병 씨가 투자한 호텔 공사가 무사히 진행될 수 있었다. 이후, 다시 광화문 집회장을 찾은 순병 씨의 심장은 태극기 부대 시절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뛰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가난과 불행에 빠트리게 한, 몸 파는 짓으로 지금 밥 먹고 산다. 인생의 덜미가 잡힌 것이 나머지 인생을 살게 한다는 게 미자 언니와 나의 공통점이기도 했다 _본문 중에서

<사마리아 여인들>은 실제 사건인 박카스 성매매 노인과 월경전 증후군으로 도벽을 갖게 된 여인의 기사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가족 모두가 등을 지게 했고,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도벽은 현재 나의 생계를 유지하게 해주는 유일한 일이 되어버렸다. 한눈에 보기에도 가난이 물컹물컹 느껴지는 미자 언니는 산이나 공원에서 몸을 팔아 먹고산다. 매춘과 도벽으로 먹고사는 두 여인의 외로운 삶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비난받고 쫓겨야 했다. 소설 후반부 산림감시원을 피해 헐거운 무릎으로 산비탈을 뛰어 내려가는 모습은 그녀들의 아슬아슬한 삶 전체를 보여준다.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 노년의 시간과 가난 앞에서 어찌할 수 없는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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