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 - 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같은 작가로서 시샘이 날 정도이다” _한승원(소설가, 심사위원장)
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후의 만찬』이 출간됐다. 올해 혼불문학상 응모작은 총 263편이었고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총 6편이었다. 그중에 4편이 최종심에 올랐고 치열한 논의 끝에 신해년(1791년),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의 순교 장면으로 소설을 여는 『최후의 만찬』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심사위원장 한승원 소설가는 이 소설에 대해 “보기 드문 수작이다.” “나는 왜 이런 소설을 쓰지 못했을까, 시샘이 날 정도이다.” “다른 소설가들이 읽으면 깜짝 놀랄 작품이다.” 등의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심사위원들은 “우리 문학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품격 높은 새로운 역사소설”이 탄생했다는 사실에 주목했으며 “오랜 철차탁마를 거친 깊은 내공의 소유자이며 절제된 시적 문장을 다루고 있다”고 평했다.
혼불문학상은 우리시대 대표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1년에 제정되어, 1회 『난설헌』, 2회『프린세스 바리』, 3회 『홍도』, 4회 『비밀 정원』, 5회 『나라 없는 나라』, 6회 『고요한 밤의 눈』, 7회 『칼과 혀』, 8회 『독재자 리아민의 다른 삶』등이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혼불문학상 수상작들은 한국소설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며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과 깊은 신뢰를 받고 있다. 제9회 혼불문학상 심사위원으로는 한승원 소설가(심사위원장), 김양호 평론가, 김영현 소설가, 이경자 소설가, 이병천 소설가가 참여했다.
살면서 죽음으로 가는 길
죽음으로써 삶으로 가는 길
200여 년 전 조선,
이념 정치 종교 대논쟁의 시대
양심과 신념의 대격돌!
정조 15년(신해辛亥, 1791년), 전라도 진산군의 선비 윤지충과 권상연이 신주를 불사르고 천주교식으로 제례를 지냈다는 이유로 완산 풍남문 앞에서 처형당한다. 두 선비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였다. 정조는 추조적발 과정에서 윤지충의 집에서 그림 한 점을 압수됐음을 보고 받는다. 열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는 그림. 죽기 전 윤지충이 말하길 예수와 그 열두 제자의 식사 모습이 그려져 있다는 그림…… 다름 아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모사본. 도화서 화원들은 그림을 불살라 없애라고 하지만 임금은 그림에서 조선과 연관된 원대한 꿈과 수수께끼 같은 비밀을 직감한다. 그리고 서학과 유교가 맞서는 난세의 어려움을 풀어가고자 도화서 별제 김홍도를 불러들여 그림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맡긴다.
“순교란 조용하고 무거운 길이다. 길 끝에 천주의 세상과 마주할 것이다. 허나 그 길이 천주의 길이란 말인가?”
답할 수 없는 물음을 던져 놓고 약용은 깊이 시름했다. _42쪽
『최후의 만찬』은 유교와 서학의 충돌 속에서 조선의 앞날을 걱정하는 정조의 심리뿐만이 아니라 순교 소식을 듣고 신앙이 흔들리는 정약용의 심리를 마치 그 곁에서 지켜본 것처럼 그려낸다. 정약용은 “곡기를 끊고 기도에 묻혀도 글 속에 잠재된 천주의 신념은 허기”로 왔으며 “ 순교의 그루터기에서 윤지충은 살아남은 자들의 신앙을 더 어렵게” 했다고 생각한다. “약현, 약전, 약종 형들을 향한 조정의 탄압이 두려웠고, 자신을 겨냥한 노론의 사찰이 두려웠다.”(46쪽) 임금과 정약용은 사건이 더 이상 확대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으나 공서파를 앞세운 조정은 서학인의 탄압을 시작한다. 한편 박해로 인해 가족을 잃은 여섯 서학인들은 복수를 꿈꾸기 시작한다. 그들은 결의를 다지고 오랜 시간 칼을 신중하게 계획을 세운다. 『최후의 만찬』은 이처럼 새로운 이념·정치·종교가 조선에 밀려오기 시작한 무렵의 대격돌의 현장 속에 살아간 정조, 정약용, 윤지충과 권상연, 감찰어사 최무영, 도화서 별제 김홍도 등의 인물과 도향과 도몽, 박해무, 배손학 등의 서학인을 모습을 보여준다.
편입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
대한민국의 과거·현재·미래를
보여주는 역사소설
『최후의 만찬』은 기존 역사소설의 문법과는 다르다. “보통 역사소설은 스토리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독자들은 작가가 재구성해 놓은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물을 따라 가면 된다. 그런데 『최후의 만찬』은 그렇게 호락호락 독자로 하여금 따라오기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얼핏 조선 후기 정조 무렵에 일어난 천주교 탄압을 다룬 작품이겠거니 하고 예감하기 쉽지만 곧 “독자들은 그 이후에 등장하는 숱한 역사적 인물들, 정약용, 박지원, 김홍도, 정여립, 정조” 그리고 작가가 창조한 “여섯 탈춤패 초라니 암살단 등이 짜놓은 거미줄 같은 미로에 들어와 있음을 알고 적지 않게 당황할 것이다.”(「심사평」에서)
이 작품의 매력은 새로운 사상 앞에 놓인 인물들의 “짙은 향기를 풍기는, 무지개 같은 결과 무늬를 지닌” 심리묘사뿐만이 아니다. 중세 로마 피렌체의 다빈치의 불후의 작품 <최후의 만찬>에 머나먼 조선에서 온 불우한 천재 과학자 장영실의 흔적을 발견하는 발상부터 예사롭지 않다. 또한 순교한 여령(女伶)의 여식 도향이 『왕가의 비기』에 기록된 ‘불을 다룰 수 있는 돌연변이’라는 설정 또한 소설을 읽는 맛을 더하게 한다. 조선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프리메이슨’ ‘카메라 옵스큐라’ 등의 단어의 등장은 또 어떤가. “이 소설은 천천히 저작하듯 읽어야 한다. 역사소설은 역사의 몫과 작가의 몫이 있는데, 이 소설의 작가는 작가의 몫을 제대로 하고 있다.”
“이 작가의 감성은 무지갯살처럼 아름답다. 난해하고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문장은 시적이고 환상적이다. 같은 작가로서 시샘이 날 정도이다.”
_한승원(심사위원장)
『최후의 만찬』이 현재의 대한민국에 주는 의미는 크다. 조선의 오랜 통치 수단이었던 유교의 전통과 충돌해가며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발적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인 조선…… 신해년 이후 200여 년이 흐른 지금에도 이념과 정치, 신념과 양심이 격돌하고 있다. 과연 신념을 따르고 순교로써 영원한 삶을 택하는 게 옳은 선택인가. 아니면 정약용처럼 신념을 버리더라도 편입하여 살아남는 게 옳은 선택인가. 편입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 이 소설은 미래에 어떤 인간으로 남을 것인지 고뇌하게 하는 선택에 대한 이야기다.
“김홍도는 (……) 그림을 바라보는 순간 까닭 모를 두려움이 밀려왔고, 시간이 멎은 듯 눈앞이 캄캄하고 어두웠다. 얼어붙은 느낌은 무엇이 될지, 몸서리치는 것도 잠시 삶과 죽음으로 분할된 양자의 선택이 그림 속에 들어 있는 것을 알았다. _1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