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마을에 볼일이 있습니다 - 무심한 소설가의 여행법
나오키상 수상자, 가쿠타 미쓰요의 국내 첫 여행 에세이 출간!
‘낯선 곳에서 발견하는 내 삶의 조각들’
무심한 소설가의 서툰 여행법
뛰어난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가쿠타 미쓰요의 여행 에세이가 국내 첫 출간되었다. 잡지
모름지기 여행자라면 호기심이나 모험심이 가득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탐미하는 사람이라 여겨질 것이나, 그녀는 스스로 “유별나게 겁이 많은” 사람이라 “낯선 나라로 여행을 가겠다고 스스로 계획했음에도 여행 날짜가 다가오면 우울해”지곤 한다고 고백한다. 그런 그녀가 “30년 가까이 여행을 하며 알게 된 것이라면 ‘여행의 참된 즐거움’은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만날 수 없었을 사람과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대화를 나누거나 말로는 전달할 수 없는 무언가를 서로 교감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여행이 아무리 편리해지고, 구글 지도가 세상의 ‘미지’를 사라지게 만든다고 해도 그런 반짝이는 순간은 그녀 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 함께할 것이다.
그녀의 여행은, 이를테면 타국의 버스 안에서 만난 이들과 보낸 몇 시간을 통해 인생 곳곳에 놓인 ‘환승장’에서 타고 내린 인연의 순간들을 떠올리거나, 평범한 도시의 일상에서 느낀 뜻밖의 외로움을 통해 사람이 ‘몸을 붙여’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해 실감하는 일이다. 작가는 여행의 모든 순간을 통해 일상의 흩어진 조각을 맞춰 인생의 의미를 그려낸다. 낯선 길에 동행하는 크고 작은 삶의 의미, 소중한 인연의 순간, 우리가 직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삶의 과제들. 이 모든 것이 여행길에도 그리고 우리의 인생길에도 만나게 것임을. 가쿠타 미쓰요의 독특한 시각에서 보는 멋진 통찰이 글의 곳곳에 배어 있어 독자들에게 충분한 울림을 줄 것이다.
낯선 여행에서 발견하는 인연의 의미
가난했던 젊은 날의 여행을 그리워하며
“하야시 후미코(林芙美子) 작가는 열차를 갈아타며 파리로 향했고 가네코 미츠하루(金子光晴) 시인은 배를 타고 상하이로 떠났다.” 가쿠타 미쓰요는 때때로 옛날 여행을 동경해마지 않는다. 휴대전화와 무선 인터넷만 있다면 어디든 못 갈 곳 없는 지금의 여행. 단순하고 소박하며 때때로 촌스럽기까지 한 ‘미지의 여행’은 이제 사라졌다. 두근두근 바들바들하며 주변을 살피고 발걸음을 옮기며, 불편함을 견디는 여행은 이제 두 번 다시 할 수 없으리라. 그녀는 가진 것이라곤 시간뿐이던 가난한 젊은 날의 서툰 여행을 떠올린다. 그녀는 여행을 다닌 지 20년이 지나서야 자신이 얼마나 여행에 서툰 사람인지 깨달았다. 오래된 여행자는 있어도 능숙한 여행자는 없는 법.
“모두 그렇게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들여 헤매면서 혼자 여행을 하는 것이겠거니 했다. 내게 가이드북은 일단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도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거니와, 곤란한 상황이 되면 나의 뇌는 제멋대로 갑자기 멈춰버리기에 어떤 문장이나 시간표도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의지할 것은 사람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나는 20여 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행지에서 그야말로 무수의 낯선 사람에게 마구잡이로 말을 걸었다. 무작정 무엇이든 물어본다. 조금 과장하자면, 어떤 여행이든 무사히 돌아와 지금 내가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것도 모두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도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17쪽)
‘진화된 여행’이 못내 아쉬운 것은 그저 아날로그적인 여행에 대한 향수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가쿠나 미쓰요가 여행에서 경험하는 가장 소중한 순간은 바로 사소한 인연들이다. 뜻밖의 만남 속에서 발견하는 타인과의 교감, 그 무해함 속에서 확인하는 안전함, 그리고 내가 이 낯선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같은 것이다.
그녀는 일본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거나 허둥댄다면 자신에게 물어봐주길 바란다. 여행의 빚을 조금이나 갚고 싶다는 생각에. 하지만 먼저 “도와줄까요?”라고 물어보지는 못하고 그저 속으로 바랄 뿐이다. 마치 “출전 없는 선수”처럼. 가쿠타 미쓰요는 서툴게 여행한 덕분에 낯선 이들의 크고 작은 친절이 쌓여 진짜 여행의 지도를 완성해왔다고 믿는다.
또한 타인과의 교감은 여행의 경험을 더욱 확장시키기도 한다. 이 책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 태국의 타오섬(Ko Tao)에서 그녀는 잊지 못할 자연의 광경을 목격한다. “보지 말아야 할 무언가를 보는 듯한” 느낌, 지금껏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던 이 세상의 어떤 비밀 같은 것을 마주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 순간이 정말 멋졌던 것은, 그 내밀한 순간에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 내가 발견한 믿을 수 없는 어떤 것에 함께 공감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내적 체험을 나누는 일은 얼마나 감동적인가. 어쩌면 저자가 말하는 인연은, 우연히 어떤 물체들이 부딪혀 일으키는 작은 불꽃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관계”하게 되는 사람들,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의외의 순간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 그것이 인생의 인연을 받아들이는 여행자의 면모일 것이다.
가쿠타 미쓰요가 발견한 여행의 표정들
가쿠타 미쓰요가 여행하고 싶은 곳을 꼽으라면 언제나 ‘새로운 곳’이다. 그러다 십몇 년 만에 미얀마를 다시 찾았다. ‘아무것도 없다’는 수식어가 딱 맞는 마을. 오래전에 다녀온 곳이긴 했지만,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전혀 본 적도 없다고 느꼈다. “마을 전체를 감싸는 사람들의 활기가 16년 전과 전혀 다른 마을의 모습을 만들고” 있었다. 붐비는 노점상 구석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접시를 설거지하는 이들의 얼굴에서, 아침 일찍 가게를 청소하는 식당의 젊은 청년들의 어깨에서는 가벼운 흥이 느껴졌다. 인파로 가득한 노점상 골목을 빠져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어딘가 짜증스럽지 않다. 더없이 활기차게 느껴지는 기운. 아웅 산 수지 여사는 2015년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저자는 그것이 희망의 증거라고 읽어냈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든 거리의 풍경에는 당대의 사회 문화적 맥락이 스며있다.
사람이 나이 들고 성장하듯 도시도 마찬가지다. 위험하다는 ‘경험적 편견’을 가졌던 스페인은 치안 문제를 해결하고, 밤 11시에도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부딪치며 술을 마신다. 투명한 바다와 사람을 잘 따르는 개들로 가득했던 타오섬에는 편의점과 레스토랑이 생겨났고 방갈로에서 촛불을 켜고 지냈던 시간은 그녀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 안타깝게도 바다는 투명함을 잃어버렸지만 말이다. 반면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 보르도의 마을 둘레를 감싸는 큰 강은 도시의 ‘유속’에 저항하듯 사람들 사이를 유유히 흐르며 고요한 정서를 자아냈다.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도, 시장의 한복판에서도 차분함이 느껴졌다. 소음을 걷어낸 도시의 민낯은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작가로서 그리고 여행자로서 살아온 가쿠타 미쓰요. 그녀는 취재차 떠난 여행지에서 문득 젊은 시절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포장마차 거리 속을 헤집고 들어가는 내 모습, 택시나 툭툭을 타면 바가지를 쓸까 봐 그저 걸어 다니기 바빴던 내 모습, 길에서 버스 노선도를 필사적으로 해독하고 있는 내 모습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그녀는 여전히 서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낯선 길에서 헤매길 주저하지 않는다. 여행길에서 만나는 짧고 긴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 무엇보다 “좋아하는 마을에 볼일이 있”다는 기분 좋은 사실 때문에.
일본 아마존
★★★★★ 여행지에 데려가 읽고 싶은 책!
★★★★★ 쉽고 편안하게 이끌어가는 필치의 맛.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