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가의 철학 - 휴대전화 컬렉터가 세계 유일의 폰박물관을 만들기까지
그까짓 것 뭐하러 모으냐고?
수집가의 안목이 역사가 된다
어떤 물건이 이다음에 문화유산이 될지 당대에는 모른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물건이 지닌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수집가의 몫이다.
수집가가 수집하지 않은 물건은,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사건처럼 후세에 전해지지 못한다.
수집가의 안목이 역사가 된다.
이것이 나의 신념이고, 그 결과물이 휴대전화 박물관이다.
1. 수집가는 문화와 문명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는 사람이다
― 그가 모아 분류하지 않은 문화유산은 다음 세대에 전해지지 못한다
우리나라에는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휴대전화 전문 ‘폰박물관’이 있습니다. 이곳의 관장은 30년간 언론인과 작가로 지내다 ‘폰(phone)’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그까짓 것 뭐하러 모으느냐고”
우리 산업 문화유산 중 45%는 사라졌습니다. LG전자는 그들이 1959년에 처음 만든 A-501 라디오가 없어서 모형을 만들어 전시했다거나, 현대자동차가 포니를 전시하려고 수십 년 전 에콰도르에 수출했던 것 중 하나를 사왔습니다. 1983년 이후 25년간 미국인의 삶을 가장 크게 바꾼 것은 휴대전화입니다(2007년 조사). 어느 나라를 조사했어도 결과는 비슷했겠지요. 휴대폰은 20세기 후반기 이후의 산업 유산 1호인 셈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까짓 것 왜 모으느냐고 합니다. 어떤 물건이 이다음에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세월이 흐른 뒤 수집가가 가치를 알아보고 잘 수집해 후세에 전해야 역사가 됩니다. 수집가가 수집하지 못한 문화유산은, 역사 기록자가 기록하지 못한 사건처럼 후세에 전해지지 못합니다. 수집가의 안목이 역사가 됩니다. 3차, 4차 정보혁명을 목도하며 어느덧 70대가 된 저자 이병철은 폰 수집에 얽힌 에피소드부터 쉽고 재미있는 전화기의 역사까지, 휴대전화 컬렉터가 세계 유일의 폰박물관을 만들기까지, 늘 우리 손에 붙어있는 ‘폰’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내 생애에 인류는 산업혁명을 벌써 두 번째 겪고 있다. 첫 번째는 1980년대에 컴퓨터와 인터넷이 주도한 지식정보혁명(3차 산업혁명)이었다. 지금 진행되는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은 AIㆍSW+빅데이터ㆍ사물인터넷ㆍ클라우드가 대표하는 지능정보혁명이다. 3차,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 기기들을 네트워크로 통합한 정보통신기술ICT 덕분에 가능했다. 그 선봉은 이동통신이다.
이동통신이 산업혁명의 기반으로 기능하면서 휴대전화는 어느덧 이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했다. 20년 전은 달랐다. 휴대전화란 쓰고 버리는 물건이었다. 문명사 관점에서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다. 5쪽,〈지은이의 말〉에서
2. 지은이 이병철 Byung-Chul Lee
서울 목멱산 기슭 필동에서 태어나 휘문중고등학교와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기자와 글쓰기를 업으로 삼다가 2008년 경기도 여주시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휴대전화 전문 폰박물관을 열었다. 현재 여주시립 폰박물관World First & Only Mobile Museum THE PHONE 관장이다.
이병철은 1985년 첫 번째 저작 〈석주명 평전〉을 내놓았다. 그는 한국 나비 분류 체계를 바로잡은 석주명의 생애와 학문 이론을 밝히고 알리면서 30대 10년을 보냈다. 그것은 초등학생 때부터 우표를 수집한 그와 평생 60만 마리가 넘는 나비를 채집한 생물학자가 무엇인가를 모으고 분류하고 체계를 세우고자 하는 열정의 소유자라는 공통점에서 말미암은 필연이겠다.
그 뒤로 그는 10년마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곤 했다. 40대에는 탐험사, 50대에는 우먼리브와 우리말 문법. 그것들은 모두 자료를 엄청나게 수집해야 하는 일이었다. 인터넷을 이용할 수 없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해냈다. 결과는 그의 저서 열두 권 중에서 〈석주명 평전〉〈미지에의 도전 1,2,3〉〈세계 탐험사 100장면〉〈참 아름다운 도전 1,2〉〈우리 글 바르게 잘 쓰기〉에 오롯이 정리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휴대전화를 모아 체계를 세우면서 60대 10년을 폰박물관에서 보낸 사연과 소회를 〈수집가의 철학〉에 담아 내놓았다.
그는 아무 조건 없이 폰박물관 전체를 나라에 기증했다. 그 뒤 여주시가 박물관을 개관하는 데 어려움을 겪자 공채를 거쳐 관장에 취임했다. 사립을 경영하던 때나 공립을 운영하는 지금이나 그는 여전히 박물관을 찾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대한민국 산업유산 수집가이자 지킴이로 살아가고 있다.
내가 오랜 세월 열정을 바쳐 모은 유물을 나라에 기증한 것은, 내 컬렉션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개인이 소유하고 완상할 수준을 넘어선 컬렉션이니 내가 살았던 시대와 사람들을 기억해줄 우리 후손에게 넘기는 것이 옳다. 내 컬렉션이 그저 그런 수준이었다면 나는 절대로 기증하지 않았을 것이다. 본문 83쪽, 〈스미스소니언을 생각하며〉에서
3. 첨단 문명을 탑재한 휴대폰, 문명사의 눈으로 바라보다
― 휴대전화 컬렉터가 세계 유일의 폰박물관을 만들기까지
1980년대 생물학자의 평전을 저술하고, 1990년대 세계의 고고학적 성과를 엮은 탐험사를 쓰고, 2000년대 여성 인물들의 삶과 우리말 글쓰기를 집필한 저자의 인문적 저력은 2010년대 폰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휴대폰은 쓰고 버리는 기계이지만, 우리 산업문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폰은 21세기 기계문명의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것이 인간 생활에 미친 변화는 가히 문명적 전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폰에 대한 역사적이고 문학적이면서 문명사적인 접근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소리를 멀리 보내기 위한 인류의 고군분투, 열정,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개인들의 사연, 사회문화적인 변동을 문학적인 글쓰기와 감성으로 담아냈습니다.
〈수집가의 철학〉 1, 2, 3장은 테마 에세이로서 유선전화, 휴대전화, 박물관 이야기와 함께 지은이가 휴대전화를 수집해 폰박물관을 세우고 나라에 기증한 사연을 적었습니다. 4, 5, 6장은 폰박물관 전시 유물 3천여 점 중 37점을 가려 뽑아 이동통신의 역사를 연대순으로 구성하면서 기기 하나하나의 얘기를 다루었습니다. 휴대전화의 문명사적 위상과 거기에 얽힌 과학기술 이야기, 수집한 뒷이야기, 일상에서의 추억 위주로 썼습니다. 전 세계에 휴대폰에 대한 책들을 보았지만, 이런 책은 없을 만큼 독특하고 독창적입니다.
무선호출기 등장은, 군대와 경찰만 쓰던 휴대용 이동통신 수단을 일반 대중도 가지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그것은 2m를 벗어 날 수 없었던 통신 공간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첫걸음이었다. 유선전화기와 송수화기를 연결한 선의 길이에 그쳤던 사람들의 행동 반경이 수백, 수천 km로 넓혀진 것이다. 모바일 통신 수단을 얻은 인류는 그 옛날 불[火]을 얻었을 때처럼 새로운 진화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호모 모빌리쿠스(또는 호모 ‘모빌리언스, 호모 모바일런스), 그 원년元年은 1974년이었다. 본문 245쪽, 〈삐삐, 어린 백성이 처음 가져본 모바일〉에서
4. 한국의 긍지! 후세에 전할 사명이 있다
― 이름 없는 사물에 시선을 주고, 그 흔적을 보존하는 수집가
2008년 8월 초 일본 요미우리 신문 기자가 저자를 찾아왔습니다. 마에다 야스히로前田泰? 기자! 그는 여섯 시간이나 박물관에 머무르면서 집요하게 질문했습니다. 기자는 저자의 재정 상태와 관련된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정말 당신 돈으로 휴대전화를 수집했습니까?” “얼마나 들었습니까?”
이 질문을 듣는 순간, 세계에서 몇 개 없는 최초의 휴대전화 한 대를 사기 위해 수천만 원을 지불해야 했던 때가 떠올라 울컥했다고 합니다. 막내의 학교 입학을 1년 미루어야 했기 때문이었지요.
마에다 기자의 질문은 취재가 아니라 취조 같았다고 합니다. 부러움과 질투 아니었을까요! 일본은 세계에서 처음 셀룰러 방식 이동통신 서비스를 했을 뿐만 아니라 휴대전화에서도 우리보다 앞섰던 나라인데, 일본에도 없는 휴대전화 박물관이 한국에 처음 생긴 것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질문에 묻어있던 것입니다.
기자의 집요한 검증 끝에 나온 기사의 끝부분에 저자 이병철이 한 말을 인용했습니다. “世界が韓國製品の性能の高さを認めている. 携帶電話は韓國の ‘誇り’. 後世に?える使命がある.”(세계가 한국 제품의 성능과 품질을 인정하고 있다. 휴대전화는 한국의 긍지이다. 후세에 전할 사명이 있다.) ‘携帶大國の誇り?える’(‘휴대전화 대국’의 긍지를 전한다)라는 헤드라인을 단 기사가 요미우리 신문 17면에 실린 날은 광복 예순세 돌 되는 날이었다고 합니다.
2003년 경매 시장에서 처음 풀박스 사이먼을 보았을 때 내 심장은 그대로 멎을 것 같았다. 잠시 후 가격을 보았을 때는 숨이 목에 턱 걸렸다. 일단 물건을 잡아놓고 급히 은행을 찾았다. 그렇게 해서 꿈에도 그리던 사이먼을 샀다. 당장은 돈 걱정보다 그것을 손에 넣었다는 사실이 나를 들뜨게 했다. 사이먼을 받기까지 몇 주일은 1초가 3년인 양 마음을 졸였고, 받아든 날부터 또 몇 주일은 구름 위에 올라앉은 듯 몽롱했다. 세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 느낌인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이먼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까닭이다. 309쪽, 〈융합을 시작하다, 휴대전화+컴퓨터〉
5. 160여 컷의 다양한 폰 사진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1980~1990년대에 우리나라에서만도 천만 명이 넘게 애용한 무선 호출기(Pager, 삐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민간인이 널리 사용했던 이동통신 수단으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삐삐. 지금이 야 과거 유물이 되어 버렸지만, 서른다섯 살이 넘은 사람에게는 온갖 추억과 사연이 깃든 애틋한 물건입니다. 〈수집가의 철학〉에는 소리(phone)를 멀리(tele) 보내려 발명한 수많은 폰 사진이 풍부하게 실려 있습니다. 사진과 함께 씌어진 글은 또 하나의 읽을 거리입니다. 무선통신부터 아이폰까지 거의 모든 폰 사진이 담겨 있는 〈수집가의 철학〉을 펼치면 자신만의 시간 여행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자 전송 담당 비서
MM-A700(맨위 사진); 음성 인식(Voice Signal) 기능. 사용자가 문자를 친 뒤 “이 문자를 존에게 보내줘”라고 명령하면 그대로 실행한다. SPH-A800(위 사진 왼쪽) SGH-P207(위 사진 오른쪽); 음성-문자 변환(STTㆍSpeech To Text)기능. 사용자가 “존, 잘있었니?”라고 말하면 그것을 문자로 바꾸어 존에게 보낸다. 38쪽
그리움을 모아서 연 박물관
옛날 유선 전화기가 조밀하게 들어찬 이 공간에 홀로 서면 흡사 정情처럼 하냥 번져오는 그윽한 것이 있다. 전화가 없던 시절에 겪었던 가지가지 사연들을 회상하노라면 그 다다름의 끝은 하염없는 그리움이다. 72쪽
무엇에 대한 믿음일까
회로기판 아랫쪽에 새겨진 ‘할 수 있다는 믿음’. 언제, 누가, 왜 써 넣었는지 모르는 저 글이 뜻하는 바를 푼다면, 삼성전자가 세계 1위로 올라선 힘의 원천을 알 수 있으리라. 151쪽
“박사님, 응급실로 빨리 오십시오”
뉴욕 마운틴 시나이 종합병원 의사가 핸디토키 라디오 페이저로 자기를 호출하는 메시지를 듣고 있다. 244쪽
“안테나를 튜닝하자!”
전화가 잘 안 걸리고 통화가 자주 끊기던 시절 소비자가 신경 쓴 것은 안테나였다.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번호의 자부심이 다릅니다. 011’ ‘수신 불량 지역에선 안테나가 저절로 쑥쑥’ “본부! 본부! 꺾을 수 있어서 편해” “안테나의 지존은 접시” ‘단추만 누르면 늘어난다. 286쪽
‘패션 광시곡’이라고 불렸다
젤리브리 시리즈 중 거울 기능이 있는 콤팩트 모양(가운데)이 제일 인기 있었다. 3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