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살짝 비켜 가겠습니다 - 세상의 기대를 가볍게 무시하고 나만의 속도로 걷기
세상의 잔소리에도 꿋꿋이 나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이야기
여성성에 대한 고민에서 나다움에 대한 긍정으로
이 책은 여성으로서의 자신감, 특히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저자가 여성에게만 유독 엄격한 지금의 시대를 어떻게 나답게 살아갈지 고민하는 에세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여자들의 이야기다. 그녀는 많은 여자들이 그러하듯 `여자라면 예쁘고 날씬해야 한다`, `여성스럽게 상냥해야 한다`, `연애와 결혼을 못하는 건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라는 고정관념이 뿌리박힌 말 한마디에 자아가 흔들리고 상처받는다. 하지만 그녀는 타인의 외모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이들에게 정정을 요구한다든지, 남자에게 인기 없을 옷차림이라는 지적에 타협하지 않는다든지, 무턱대고 누구라도 사귀라는 압박에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법을 진지하게 고민한다든지 그녀 나름의 소심하지만 적극적으로 `나다운`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세상에는 외모가 예쁜 여자, 결혼 안 하는 여자, 이성에게 인기가 있는 여자, 동성에게 인기가 있는 여자 등 다양한 여자가 있다. 어떤 옷을 입든 어떤 성격이든 화장을 하든 안 하든 있는 그대로 매력이고 여자다움이어야 한다. 이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에 끼워 맞출 필요도, 눈치 볼 필요도 없다. 여자들은 좀 더 자신의 인생을 즐길 필요가 있다. 이 사회가 말하는 대로 여자답지 못해 고민인 사람, 아무리 노력해도 콤플렉스를 떨쳐내지 못하는 사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여성성의 굴레에서 벗어나 한 인간으로서 가장 나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방법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세상의 무책임한 관심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글
나를 조금씩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못난이로 살아온 내게 일어난 일들, 거기서 느꼈던 감정들, 생각들을 글로 꺼내어 마음을 정리해서 과거의 나를 조금이라도 구원해주고 싶다."
_p. 19 중에서
만화와 드라마로 큰 사랑을 받았던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얼굴이 아니라 그 질 떨어진 마인드를 수술하지 그랬냐." 시작은 `강오크`라는 별명이었다. 못생긴 외모로 놀림을 받은 주인공 `강미래`는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성형으로 예쁜 외모를 갖게 됐지만 오랫동안 주눅 들었던 마음은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채 여전히 자신을, 타인을 외모로 평가하고 있었다. 콤플렉스는 마음의 문제였다. 주인공은 이를 깨닫고 스스로를 엄격하게 옭아맨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힘겹게 부딪치며 이겨내고자 노력한다. 이 웹툰은 사소해 보이는 말 한마디가 어떻게 한 사람의 정신을 집어삼키는지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고통스러운 노력이 필요한지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도 날씬하지 않은 몸매와 큰 키, 여드름 가득한 피부 때문에 오랫동안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시작은 부모님의 `못생겼다`는 말이었다. 외모에 대한 부모님의 차가운 시선이 그대로 그녀의 마음에 박혀 그녀는 옷을 고를 때도, 누군가와 친해질 때도,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할 때도 못생긴 자신이 감히 그래도 괜찮을지부터 걱정했다. 못난 외모는 그녀의 인생에서 히말라야급 허들이 되었다. 그녀는 그것이 지나친 자의식 과잉이라는 것을 안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콤플렉스에서 자유로워지는 수천, 수만 번의 경험이 필요하다. 저자는 아직 자신을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마음의 벽에 부딪치는 건 몸과 마음이 아픈 일이지만 그녀는 노력하고 있다. 이 책은 그 노력의 일부다. 그녀 자신은 물론 그녀처럼 세상의 차가운 말과 시선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말이다.
너와 나의 모호한 거리
저에겐 이 정도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혼자서 걷는 외국의 낯선 거리. 거리에서 첫눈에 보고 반한 원피스, 발색이 마음에 드는 아이섀도. 나는 언제나 내가 설레고 좋아하는 것들을 잘 찾아냈고 그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방법도 잘 알았다. 하지만 그 대상이 사람인 경우에는 아무리 해도 그렇게 되지 않았다."
_p. 102 중에서
흔히 나이를 먹을수록 진실된 친구를 만나기 힘들다고들 한다. 어린 시절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마냥 웃고 떠들 수만은 없기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이미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에게 특별한 이유도 없이 괴롭힘과 거절을 경험했다면 그 사람에게 인간관계는 더 이상 나이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고등학생 시절 저자는 친구들에게 "그냥" 왕따를 당했다. 이후 그녀는 인간관계를 맺을 때면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보호할 공간부터 확보했다. 하지만 동시에 세상은 그녀에게 사회성을 기르라고, 털털해지라고, 나긋나긋해지라고 강요했다. 그래서 그녀는 모두에게서 심지어 가족에게서도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적당히 관계의 거리를 타협하기 위해 술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술은 그녀를 그 자리에서 없어선 안 될 사람으로, 털털한 친구로, 유쾌한 동료로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녀는 자신이 누구에게도 어떤 존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다. 외로운 타향살이를 하는 친구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지도 못했고, 크게 의지하던 남자에게 끝끝내 마음을 열지도 못했다. 그녀는 물건에게 자신의 마음을 줬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편안하게 마음을 열 수 있는 거리를 찾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녀처럼 우리의 관계 또한 어린 시절의 천진난만함은 사라졌지만 때론 진심으로, 때론 조심스럽게 각자의 거리를 만들어나가고 있을 것이다.
연애와 결혼을 해야 참된 어른일까
비로소 자립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남자가 가져다주는 행복을 기다리지 않는다. 혼자서도 똑바로 걸어갈 수 있다는 것, 내 능력을 인정해줄 곳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내 힘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내고 싶다."
_p. 161 중에서
나이를 먹을수록 "어른들 말 틀린 게 하나도 없다"는 말을 하는 횟수가 늘어난다. 그럼에도 절대 수긍할 수 없는 건 "여자의 행복은 좋은 남자를 만나서 아들, 딸 잘 낳고 사는 거다"라는 말이다. 맛있는 맛집이나 효과가 좋은 화장품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그러나 맛있다거나 효과가 좋다는 후기를 들을 수도, 찾을 수도 없는 결혼을 왜 그렇게 앞다투어 권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인식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 해보지 않은 사람이 뭘 모르는 걸 수도 있으니. 그렇다 쳐도 권유 방식에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 결혼은 대개 효용보다는 결핍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홍보되기 때문이다. 연애나 결혼을 못하는 사람은 정상적인 어른이 아니라는 식으로 말이다.
저자는 결혼에 실패했음에도 잘난 여자가 아닌 멍청한 아내로 살 것을 권하는 엄마와 이모들의 잔소리에 혹해 결혼의 달콤한 미래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상상하면 할수록 도저히 현실감이 떨어졌다. 자신의 힘으로 행복해지지도 못한 채 남자에게 의지해서 결국 자신의 삶을 잃게 된 엄마와 이모들의 예가 너무나 큰 교훈이 되었다. 그래서 청소와 설거지, 잔심부름을 당연히 여자의 몫으로 여기는 회사에서도 힘겹게 탈출했다. 그녀에게 연애와 결혼은 목표가 아닌 자연스러운 인생의 옵션들 중 하나다. 이제 그녀는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스스로의 힘으로 행복을 일구는 연습을 해나가고 있다. 그것이 비로소 자립하는 것이라고,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라고.